서울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라디오 청취를 제한해야 한다는 민원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 서울시의회에 접수된 라디오 청취 제한을 요구하는 시민의 건의
2026년 7월, 서울시의회 의회신문고에 서울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운행 중 라디오 청취를 금지하는 조례를 만들어 달라는 시민 민원이 접수됐다. 관련 내용은 7월 14일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졌으며, 실제 금지 조치가 시행된 사건은 아니고 시민의 조례 제정 요구에 서울시가 공식 입장을 밝힌 사안이다.
민원인은 시내버스가 운전기사 개인의 공간이 아니라 다수의 승객이 함께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승객이 원하지 않는 음악이나 방송을 계속 들어야 하고, 특히 조용히 이동하고 싶은 시간대에는 라디오 소리가 불편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민원의 주된 취지였다.
민원에는 단순한 소음 문제뿐 아니라 안전과 승객 응대에 관한 주장도 포함됐다. 민원인은 일부 기사가 라디오 때문에 하차 벨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음악을 크게 따라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라디오를 꺼 달라는 요청에 불친절하게 대응하거나 난폭하게 운전한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이는 민원인이 제시한 경험과 주장으로, 해당 사례들이 별도의 조사로 사실 확인됐다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 민원에 대한 서울시의 답변
서울시 버스정책과는 시내버스 안에서 라디오를 듣는 행위 자체를 일괄적으로 금지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현행 법령에는 버스 운전기사의 라디오 청취를 직접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이 없고, 일반 차량에서도 통상 허용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곧바로 전면 금지 조례를 마련하는 데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신 서울시는 라디오 음량이 지나치게 크거나 승객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방송을 장시간 틀어 놓는 경우에는 운수회사와 기사에게 자제를 요청하기로 했다. 라디오 청취가 안전운전이나 승객 응대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운수종사자 교육과 현장 관리도 계속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 찬성 입장: 라디오 청취를 금지하거나 강하게 제한해야 한다
'시내버스 기사의 라디오 청취를 제도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에 찬성하는 시민들은 버스는 기사의 개인 공간이 아니라 승객이 함께 이용하는 공공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기사가 개인적으로 선택한 음악·시사, 방송·종교 방송 등을 차량 전체에 들려주는 것은 다른 승객에게 특정 콘텐츠를 사실상 강제로 듣게 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승객마다 소음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고, 통화, 독서, 휴식, 공부 등 버스를 이용하는 목적도 다르기 때문에 차량 내부는 가능한 한 중립적이고 조용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운전에 필요한 소리를 가릴 위험도 있다. 시내버스 운전기사는 도로 상황뿐 아니라 하차 벨, 승객의 요청, 차량 이상음, 다른 차량의 경적 등 여러 청각 신호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라디오 음량이 지나치게 크면 이러한 신호를 즉시 파악하기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안전을 우선한다면 운행 중 방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민원인도 라디오 때문에 기사가 하차 벨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정류장을 지나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이러한 사례가 실제 조사나 행정처분을 통해 사실로 확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적정 음량'만으로는 기준과 관리가 모호해질 수도 있다. 서울시는 전면 금지보다 적정 음량 유지와 운수회사 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찬성 측에서는 무엇이 적정 음량인지 기사, 승객, 운수회사마다 판단이 달라 현장에서 일관되게 관리하기 어렵다고 본다. 승객이 직접 기사에게 소리를 낮춰 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불필요한 마찰도 발생할 수 있다.
● 반대 입장: 라디오 청취 자체를 전면 금지해서는 안 된다
반면, 반대측은 현행법상 라디오 청취 자체는 금지 행위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운전자가 볼 수 있는 위치의 영상 재생, 영상표시장치 조작 등을 제한한다. 반면 단순히 라디오 방송을 듣는 행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별도의 규정은 없다. 서울시도 일반 차량에서 통상 허용되는 행위인 만큼, 시내버스 기사만을 대상으로 조례를 통해 전면 금지하려면 시민 의견과 운행 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진짜 문제는 라디오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음량과 조작 방식이다. 반대 측은 작은 음량으로 틀어 놓은 라디오와 하차 벨을 듣지 못할 정도로 크게 틀거나 운전 중 반복적으로 주파수를 조작하는 행위를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라디오를 듣는 것 자체보다 실제 운전을 방해했는지가 안전 판단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장시간 운전하는 기사의 근무환경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버스 운전은 장시간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업무이며, 전문 운전자는 일반 운전자보다 누적 운전 시간과 피로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 국내 버스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장시간 근무, 수면 부족, 건강 상태, 반복적인 운전환경 등이 전문 운전자의 피로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이를 근거로 반대 측에서는 적정 음량의 라디오가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단조로움을 줄여주거나 기사에게 심리적 휴식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영국의 공공장소 배경음악 줄이기 운동과 런던 대중교통의 '이어폰 사용' 캠페인
이번 논쟁과 유사한 해외 사례로 영국의 공공장소 배경음악 줄이기 운동과 런던 대중교통의 '이어폰 사용' 캠페인이 있다. 영국의 시민단체 Pipedown은 매장, 병원, 공항 등 공공장소에서 원하지 않는 배경음악이 계속 재생되는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 단체는 배경음악이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대화를 방해하고 청각장애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이명 환자, 고령자 등 소리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업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배경음악을 줄이거나 중단하도록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벌여 왔다.
이러한 활동의 대표 사례로 영국 유통업체 Marks & Spencer(M&S)가 있는데 해당 기업은 2016년 매장 내 배경음악을 중단했다. 이는 고객들의 의견과 시민단체의 요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로 알려져 있으며, Pipedown은 이를 대표적인 캠페인 성과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2025년 런던교통공사(TfL)에서도 대중교통에서 휴대전화 스피커로 음악이나 영상을 재생하거나 큰 소리로 통화하는 대신 이어폰을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Headphones On' 캠페인을 시작했다. 캠페인은 다른 승객도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서로를 배려하자는 'Travel Kind' 캠페인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TfL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는 이어폰 없이 재생되는 음악이나 큰 소리의 통화를 불편한 소음으로 느낀다고 답했다. 이에 TfL은 지하철과 버스, 엘리자베스 라인 등에 포스터를 게시하고 이어폰 사용을 권장하는 안내를 실시했다.
또한 런던의 TfL Byelaws(교통 운영 규정)에는 허가 없이 음악이나 영상을 스피커로 재생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일반적으로는 안내와 계도를 우선하지만,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승차 거부, 하차 조치, 또는 기소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최대 1,000파운드의 벌금도 부과될 수 있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숙명여대 윤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