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유럽행 항공권을 검색했다가 결제창까지 갔다 그대로 닫았다. 유류할증료가 정점을 찍고 내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보고 들어간 참이었으니 항공료가 발목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걸린 것은 그 아래 숫자였다. 그 무렵 원/유로 환율은 1,780원대였고, 6월 9일에는 1,783원 73전으로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그러던 유로 환율이 7월 30일 매매기준율 기준 1,663원 70전이다. 두 달 사이 벌어진 이 차이는 여행 예산에서 정확히 얼마가 되는가.
● 2주 배낭여행, 유로로 얼마나 쓰나
얼마나 큰 차이인지 보려면 기준이 하나 필요하다. 대학생이 실제로 짤 법한 일정으로 파리와 바르셀로나, 로마와 피렌체를 도는 13박 14일을 잡았다. 네 도시 모두 유로를 쓰기 때문에 환전이 한 번이면 되는데, 통화가 섞이지 않아야 환율 하나만 놓고 비교할 수 있어서다. 호스텔 도미토리 13박과 하루 두 끼 외식, 도시 간 이동 세 구간에 루브르 32유로와 사그라다 파밀리아 26유로 같은 입장료를 쌓아보니 현지 지출이 2,000유로 안팎으로 모였다. 원화로 결제하는 항공권은 뺀 금액이며, 숙박과 항공은 예약 시점마다 값이 달라지므로 이하의 계산은 현지 지출을 2,000유로로 놓고 진행하였다.
● 100원이 만드는 20만 원
여행자는 유로를 쓰는 쪽이다. 원화가 강해지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유로를 살 수 있고, 원화가 약해지면 같은 여행에 더 많은 돈이 든다. 이 금액에 환율을 곱하면 답이 나온다. 유로당 100원이 오를 때마다 여행 비용은 20만 원씩 불어난다. 6월 고점인 1,783원 73전을 적용하면 357만 원이던 예산이 7월 30일 환율 1,663원 70전에서는 333만 원으로 줄어들어, 120원의 차이가 24만 원을 만든다. 항공권은 몇 번씩 값을 비교하면서도 환율은 출국 직전에야 들여다보는 것이 보통인데, 예산에 미치는 크기로 보면 그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 환율은 왜 내렸나
이번 하락에는 국내 성장률 개선이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 한국은행이 7월 23일 발표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속보치는 전 분기 대비 0.6%로, 5월에 내놓은 전망치 0.2%의 세 배였다. 반도체와 기계·장비를 중심으로 수출이 1.4% 늘었고,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교역조건이 개선되면서 실질 국내총소득은 1988년 1분기 이후 38년 만에 가장 크게 늘었다. 수출로 들어온 달러 가운데 일부가 원화로 환전되고 성장 전망이 밝아지면, 원화를 사려는 수요도 함께 늘어난다.
다만 환율은 미국 금리와 달러 가치, 국제 자금의 흐름까지 여러 힘이 겹쳐 정해지므로 국내 지표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앞을 내다볼 때 걸리는 것은 유가다. 중동 정세가 흔들리며 유가가 오르면,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한국에서는 결제 대금으로 나가는 달러가 늘어 원화가 약세 압력을 받는다. 지금의 환율이 그대로 이어지리라 보기 어려운 이유다.
● 맞히는 대신 나누기
그렇다면 환율이 내려온 지금, 필요한 돈을 한꺼번에 바꿔두어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러지 않는 편이 낫다. 환율이 여기서 더 내려갈지 되돌아 오를지 미리 아는 방법이 없고, 그 방향을 내다보는 일은 이를 전업으로 다루는 기관에도 쉽지 않다.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나누는 일이다. 필요한 금액을 서너 번에 걸쳐 환전하면 환율이 높은 날과 낮은 날이 섞이면서 평균 매입 단가가 완만해지고, 하루의 환율에 전부를 거는 일을 피할 수 있다. 기업이 쓰는 방식도 원리는 같다. 수출 대금을 달러로 받는 기업은 선물환 계약으로 미래 시점의 환율을 미리 고정해두는데, 유리하게 움직였을 때의 이익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불리하게 움직였을 때의 손실을 정해진 범위 안에 묶어둔다. 중요한 것은 환율을 맞히는 쪽이 아니라 한 번에 크게 잃지 않는 쪽이다.
두 달 전 닫았던 결제창을 요즘 다시 열어두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항공권 탭 옆에 환율 창을 하나 더 띄워두게 됐다는 정도인데, 숫자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출발일을 저울질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여행의 절반은 계획에 있다고들 하니, 그 계획에 환율 한 줄을 더한 것뿐이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성균관대 양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