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3일, 히가시노 게이고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세. 대장암 투병 끝에 27일 일본 출판사 고단샤가 부고를 전했다. 추리소설을 펼치는 이유는 보통 하나다. 누가 죽였는지 알고 싶어서. 그런데 히가시노의 책을 덮을 때 남는 질문은 늘 조금 달랐다. '저 사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범인을 잡으려고 시작한 독서가 범인의 인생을 걱정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이상한 부작용에 유독 깊이 중독된 나라가 있다면, 한국이다.
교보문고가 2009년부터 10년간 집계한 결과, 히가시노 게이고는 약 127만 부를 팔며 해외 작가 판매 1위를 기록했다. 가장 많이 팔린 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약 36만 부. 최근 10년(2016~2026) 데이터로 봐도 순위는 그대로다. 해외 작가 1위, 국내외 통틀어 한강 다음 2위이다.
● 그의 악당들은 특별하지 않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원래 오사카부립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엔 초능력자나 만화 같은 악당이 잘 안 보인다. 대신 교사, 회사원, 연구원, 부모 같은 '생활인'들이 범죄의 자리에 선다. 이들이 선을 넘는 이유도 거창하지 않다. 회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가족을 지키려고, 이미 망가진 삶을 어떻게든 되돌려보려고. 야망은 소박한데 결과는 끔찍하다. 그래서 독자는 이 범죄를 '남의 일'로 밀어내지 못한다. 조건이 조금만 달랐다면 나도 저 자리에 있었을 수 있다는 불편한 감정이 남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사회가 모든 구성원에게 성공을 요구하면서도 거기 도달할 합법적인 길은 공평하게 주지 않을 때 '긴장'이 발생한다고 봤다. 정상적인 문이 닫힌 사람은 목표를 포기하거나, 규칙 밖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 범인 이시가미가 원한 건 돈도 명예도 아니었다. 자신을 다시 살게 해준 사람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방황하는 칼날』의 아버지는 법이 딸의 죽음에 충분히 답하지 못했다고 느낀 순간, 스스로 심판대에 오른다. 범죄는 분명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선택 직전까지 인물을 떠밀었던 압력을 끝까지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성과와 책임 사이에 끼어 사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는 살인사건이라기보다 '평범한 사람이 무너지는 과정을 미리 돌려보는 시뮬레이션'에 가깝게 읽혔을지 모른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장면이 유독 많다. 입시 앞에서 초조한 부모, 조직의 체면부터 챙기는 회사, 피해자인데도 남 시선을 먼저 신경 쓰는 인물. 한국과 일본이 똑같은 사회는 아니지만, 가족과 조직의 힘이 세고 개인의 체면과 책임이 무겁게 다뤄진다는 점에서 두 사회는 서로 낯설지 않게 이해된다.
● 살인 없이도 제일 잘 팔린 이유
여기까지면 '범죄 스릴러물을 잘 만들어서 인기'라는 결론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10년 넘게 부동의 1위는 살인이 전면에 나오는 작품이 아니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었다. 명탐정도, 트릭도, 시체도 없다. 빈집에 숨어든 좀도둑 세 명이 과거에서 날아온 고민 편지에 답장을 하고, 그 답장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다. 이미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에게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을까? 이 질문 하나로 1위를 찍었다.
독자들이 정말 산 건 '추리'가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독서 경험이었다. 빠르게 읽히고, 결말이 궁금하고, 마지막엔 사람이 남는 경험. 그래서 "추리소설 추천해 주세요"가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책 없나요?"라는 말이 생겼다. 이름 하나가 장르가 된 순간이다.
● 한국인이 정말 좋아한 건 범인이 아니었다
그는 범죄를 변명하지 않았다. 범인이 불쌍하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한 사람을 '가해자'라는 단어 하나에 가두지 않았다. 사랑했던 시간, 실패한 직장인이었던 시간, 상처받은 아이였던 시간까지 끝까지 함께 펼쳐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부고를 접한 독자들의 반응은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래 알던 사람을 떠나보낸 것 같은 상실감. 우리는 그를 만난 적도,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그런데도 이제 그의 신작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독 쓸쓸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서점 책장 어딘가에는 여전히 『용의자 X의 헌신』이, 『악의』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꽂혀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는 질문이 있다. 이 사람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이제는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다시 첫 페이지를 편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서울시립대 이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