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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열풍에 1조원대 변압기 계약까지…반도체 뒤에서 커지는 '전력·냉각 시장’

숙명여대
윤가은 숙명여대 · 프렌즈 1기
2026.09.02
IEA가 공개한 2015~2025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
IEA가 공개한 2015~2025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

AI 열풍의 수혜주는 반도체 기업뿐일까. 지난 7월 HD현대일렉트릭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최대 1조 1212억 원 규모의 전력 인프라 공급 기본계약을 체결했다. 공급처는 북미에 건설되는 데이터센터다. 올해 4월과 5월 LS ELECTRIC 역시 북미 빅테크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전력기기를 잇달아 공급하기로 했다.

AI 산업과 거리가 멀어 보였던 변압기와 전력기기가 AI 데이터센터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냉각 시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지난 7월 LG전자가 개발한 데이터센터용 액체냉각 장치는 국내 기업 최초로 엔비디아의 품질 인증을 받았다.

반도체 기업들이 AI의 두뇌를 만들고 있다면, 이제 그 두뇌에 전기를 공급하고 열을 식히는 기업들까지 AI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AI가 커질수록 변압기와 냉각장치가 함께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AI에게 질문할 때마다 늘어나는 전기 사용량]

우리가 생성형 AI에 질문을 입력하면 몇 초 만에 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화면 뒤에서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의 서버가 움직인다. 특히 AI를 학습시키거나 질문에 답을 생성하는 과정에서는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처리하는 GPU(그래픽처리장치)가 대량으로 사용된다. GPU가 많아지고 성능이 높아질수록 필요한 전력도 커진다. 결국 AI 이용 증가가 데이터센터 확대와 전력 수요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는 2024년 약 415TWh(테라와트시)의 전력을 사용했다. 전 세계 전력 소비량의 약 1.5%다. IEA는 이 수치가 2030년 약 945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일본 전체의 연간 전력 소비량보다 많은 규모다. 특히 AI와 관련된 고성능 서버의 전력 소비는 같은 기간 연평균 약 3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 소비 증가분 가운데 고성능 서버가 차지하는 비중도 절반에 가깝다.

그렇다면 성능 좋은 GPU만 충분히 확보하면 데이터센터를 계속 늘릴 수 있을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서버를 돌릴 전기를 공급할 전력망과 각종 전력설비가 함께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IEA는 전력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2030년까지 계획된 전 세계 데이터센터 용량 가운데 약 20%가 전력망 연결 지연 위험에 놓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AI 경쟁에서 '전기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가'가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는 셈이다.

HD 현대일렉트릭 DPRS 방폭형 변압기
HD 현대일렉트릭 DPRS 방폭형 변압기

[AI 확산에 수요 늘어난 의외의 기기]

그렇다면 그 수혜가 왜 변압기까지 이어지는 걸까.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송전망을 거쳐 데이터센터까지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사용 목적에 맞게 전압을 바꾸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 이를 담당하는 핵심 설비 중 하나가 변압기다.

쉽게 말해 AI 데이터센터가 거대한 '전기 먹는 공장'이라면 변압기와 각종 전력기기는 공장이 사용할 전기를 적절한 형태로 전달하는 기반 시설이다. 데이터센터만 짓는다고 AI 서버를 바로 가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유다.

문제는 전 세계에서 전력망 투자가 동시에 늘어나면서 변압기를 필요할 때 바로 구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IEA가 주요 업계 관계자를 조사한 결과 대형 전력용 변압기를 새로 주문해 공급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최대 4년에 달한다. 2021년과 비교하면 대기 기간이 약 두 배로 길어졌다. 변압기 가격 역시 2019년과 비교해 약 75% 상승했다.

AI 데이터센터 확대도 이러한 전력기기 수요를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올해 IEA는 AI 확산 과정에서 변압기 등 에너지 기술의 공급망이 더욱 빠듯해지고 있다고 짚었다. 실제 국내 기업의 공급 계약에서도 데이터센터의 존재감이 나타난다.

LS ELECTRIC은 지난 4월 북미 빅테크 기업의 초대형 데이터센터에 배전 변압기와 배전반 등을 공급하는 1703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달에는 미국 뉴멕시코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사업에서 약 3190억 원 규모의 배전 솔루션 공급 계약을 따냈다. 이어 5월에는 미국 빅테크 데이터센터에 약 1050억 원 규모의 전력기기를 공급하는 계약을 추가로 체결했다.

HD현대일렉트릭도 지난 7월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최대 1조1212억 원 규모의 장기 공급 기본계약을 맺었다. 배전기기 5539억 원, 전력기기 5673억 원 규모로, 해당 제품은 북미 지역 데이터센터에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공급될 예정이다.

최근 기업들의 공급 계약을 비교해 보면 AI 데이터센터의 수혜가 변압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눈에 띈다. 배전 변압기부터 배전반, 차단기, 초고압 변압기까지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전달하고 관리하는 설비 전반으로 수요가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LS ELECTRIC은 지난 2일 KT클라우드와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앞으로 KT클라우드가 구축하는 신규 AI 데이터센터에 초고압 변압기와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수배전반 등을 공급하고 향후 무정전전원장치(UPS)와 공조 시스템으로 공급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 최초로 엔비디아(NVIDIA) 인증을 획득한 LG전자의 600kW급 냉각수 분배 장치(CDU)
국내 최초로 엔비디아(NVIDIA) 인증을 획득한 LG전자의 600kW급 냉각수 분배 장치(CDU)

[GPU의 열기만큼 뜨거워진 냉각 시장]

AI 데이터센터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전기뿐만이 아니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GPU에서는 그만큼 많은 열이 발생한다. 서버가 과열되면 정상적인 성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데이터센터에는 서버를 식히는 냉각설비가 필수적이다. IEA가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증가분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냉각을 비롯한 기반 시설이 2024~2030년 전력 소비 증가분의 약 20%를 차지한다.

기존 데이터센터에서는 주로 차가운 공기를 서버에 보내 열을 낮추는 '공랭식' 방식이 사용됐다. 우리가 에어컨으로 방을 식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AI 반도체의 성능이 높아지고 하나의 서버랙에 더 많은 고성능 칩이 들어가면서 공기보다 열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액체를 이용하는 냉각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7월 600kW급 '냉각수 분배 장치(CDU)'에 대해 국내 기업 최초로 엔비디아의 품질 인증을 받았다. CDU는 차가운 냉각수를 AI 서버로 보내 반도체에서 발생한 열을 식히고, 뜨거워진 냉각수를 다시 냉각설비로 보내는 장치다.

LG전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1MW·2.5MW·4MW급 대용량 CDU까지 엔비디아 인증을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3월에는 2029년까지 2800억 원이 투입되는 전북 완주 20MW급 AI 데이터센터에 냉각 솔루션 공급을 추진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즉 GPU의 성능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GPU를 얼마나 잘 식힐 것인가'를 둘러싼 냉각 시장도 함께 커지고 있다.

NVIDIA DGX SuperPOD With DGX GB200 Systems
NVIDIA DGX SuperPOD With DGX GB200 Systems

[심화되는 AI 경쟁, 이제는 화면 너머를 봐야 한다]

올해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을 한데 놓고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보인다. 만드는 제품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AI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전력과 냉각 등 '물리적 인프라'를 공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AI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와 이러한 기반 시설을 늘리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IEA에 따르면 데이터센터는 통상 1~3년 안에 구축할 수 있지만 새로운 전력망을 계획하고 건설하는 데에는 5~15년이 걸릴 수 있다. 대형 변압기 역시 주문 후 공급까지 최대 4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AI 반도체가 빠르게 발전하더라도 이를 가동할 기반 시설이 같은 속도로 늘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AI 경쟁의 범위는 '누가 더 좋은 반도체를 만드느냐'에서 '그 반도체를 실제로 얼마나 많이 가동할 수 있느냐'로 넓어지고 있다. AI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는 데에는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몇 초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도체뿐 아니라 전기를 전달할 변압기와 전력망, 서버의 열을 식힐 냉각설비가 필요하다. AI 시대의 새로운 시장은 화면 뒤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숙명여대 윤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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