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드숍에서 멀티브랜드 플랫폼으로…다이소·이커머스·해외 유통이 새 경쟁자로
한때 명동과 대학가에서 화장품을 사려면 미샤·에뛰드·이니스프리 같은 브랜드 매장을 차례로 돌아다니는 것이 익숙했다. 지금은 한 매장에서 토리든의 세럼과 클리오의 색조, 라운드랩의 선케어 제품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화장품을 사는 장소가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K뷰티의 유통 구조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CJ올리브영이 있다. 올리브영의 별도 기준 매출은 2022년 2조7774억원에서 2023년 3조8611억원, 2024년 4조7899억원을 거쳐 지난해 5조8335억원까지 늘었다. 지난해 영업이익도 7447억원으로 전년보다 22.5% 증가했다. 성장세는 올해도 이어져 2026년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3.7% 증가한 3조3349억원으로 처음 3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10여 년 사이 화장품이 갑자기 더 많이 필요해진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소비자가 상품을 발견하고 비교한 뒤 구매하는 경로다. 브랜드가 직접 소비자를 만나던 로드숍의 자리를 여러 브랜드를 한데 모아 선별해 보여주는 유통 플랫폼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 사드·코로나 뒤에 가려진 변화…소비자는 이미 ‘브랜드 밖’으로 나왔다
로드숍 쇠퇴의 출발점으로는 2017년 전후 사드(THAAD) 갈등이 자주 거론된다. 중국인 단체관광객 의존도가 높았던 명동 등 주요 상권이 타격을 받았고, 이후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구조조정이 빨라졌다. 더페이스샵·아리따움·미샤·이니스프리·에뛰드하우스·스킨푸드 등 주요 6개 브랜드의 가맹점 수는 2018년 3394개에서 2020년 2298개로 2년 만에 1000개 이상 줄었다.
그러나 관광객 감소만으로 로드숍의 쇠퇴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소비자가 한 브랜드 안에서 기초부터 색조까지 모두 해결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SNS와 온라인 리뷰를 통해 브랜드 이름보다 특정 제품 하나가 먼저 알려지기 시작했고, 기초는 A사, 쿠션은 B사, 립 제품은 C사를 선택하는 소비가 자연스러워졌다.
브랜드 수가 빠르게 늘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내 화장품 제조 생태계도 있다. 특히 ODM은 브랜드가 대규모 생산시설을 직접 갖추지 않아도 제조기업의 연구개발과 생산 역량을 활용해 제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한다. 정부 역시 K뷰티의 경쟁력으로 기획·생산·유통의 전문기업 분업 구조와 높은 제조 역량을 꼽는다.
아이디어와 마케팅 능력을 갖춘 중소 브랜드가 빠르게 시장에 들어올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의 선택지도 함께 넓어진 셈이다. 브랜드가 많아질수록 유리해진 것은 한 회사 제품만 파는 매장이 아니라 그중 어떤 제품을 살지 골라주는 유통 채널이었다.
● 1000개 매장이 배송망으로…올리브영이 바꾼 오프라인의 역할
올리브영의 성장은 매장수가 증가한 것 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2017년 온라인몰을 열고 이듬해 온라인 주문 상품을 가까운 매장에서 배송하는 ‘오늘드림’을 도입하면서 매장의 역할을 바꿨다. 상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던 공간이 온라인 주문을 처리하는 재고·배송 거점으로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7년 1074개였던 매장망이 온라인 성장의 기반이 되는 구조였다.
이른바 ‘옴니채널’ 전략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서로 다른 판매처로 경쟁시키는 대신 소비자가 두 채널을 오가도록 연결한다. 매장에서 제품을 시험해본 뒤 앱으로 주문할 수도 있고, 온라인 주문을 매장에서 받거나 가까운 매장에서 곧바로 배송받을 수도 있다.
이 구조는 중소·인디 브랜드에도 새로운 성장 경로를 만들었다. 올리브영에서 연간 1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린 입점 브랜드는 2024년 처음 100개를 넘어섰고, 2025년에는 116개로 늘었다. 과거 대형 화장품 회사가 자체 매장과 브랜드 인지도를 앞세워 소비자를 만났다면 이제는 작은 브랜드도 유통 플랫폼에 올라탄 뒤 빠르게 전국 소비자에게 노출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같은 H&B 업태의 경쟁자들은 하나둘 시장을 떠났다. GS리테일의 랄라블라는 2022년 사업을 종료했고 롯데쇼핑의 롭스도 가두점을 정리한 뒤 숍인숍 형태로 축소됐다. 2019년 한국에 진출했던 세포라 역시 2024년 국내 사업에서 철수했다.
● H&B 경쟁자는 사라졌지만…다이소·온라인이 새 전선
그렇다고 올리브영의 경쟁자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쟁의 범위가 H&B 전문점 밖으로 넓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다이소다. 다이소 뷰티 매출은 2024년 전년보다 144% 증가한 데 이어 2025년에도 약 70% 늘었다. 2022년 7개 브랜드, 120여 종에 불과했던 상품군도 올해 1월 기준 160여 개 브랜드, 1700여 종으로 불어났다.
두 회사가 소비자에게 주는 가치는 다르다. 올리브영이 신제품과 인기 브랜드를 한곳에서 비교하도록 만드는 ‘발견과 큐레이션’에 강점이 있다면 다이소는 1000~5000원대의 단순한 가격 구조로 구매 문턱을 낮춘다. 쿠팡·네이버를 비롯한 이커머스와 브랜드 공식몰까지 포함하면 소비자가 화장품을 살 수 있는 경로는 더 많아진다.
이 때문에 올리브영의 경쟁력을 단순히 H&B 시장점유율만으로 평가하기도 어려워졌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도 2023년 올리브영 사건을 심의하면서 오프라인과 온라인 판매채널 간 경쟁이 커지고 화장품 유통채널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시장지배적 사업자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관련 심의를 종료했다. 어떤 채널까지 하나의 경쟁시장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시장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 국내서 만든 ‘발견의 공식’…이제 미국서 시험한다
올리브영의 다음 승부처는 해외다. 올해 8월까지 국내 오프라인 매장에서 외국인이 구매한 금액은 이미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11월에야 1조원에 도달했지만 올해는 세 달 빨라졌다. 전체 오프라인 매출 가운데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2년 2%에서 올해 8월 33%까지 올라갔다. 회사 집계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올리브영이 국내 소비자를 넘어 방한 관광객의 K뷰티 구매 창구로 자리 잡고 있다는 흐름은 분명하다.
올해부터는 이 모델을 해외에 직접 옮기기 시작했다.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첫 현지 매장을 열어 약 400개 브랜드, 5000여 종의 상품을 선보였고, 8월에는 세포라 미국 580여 개 매장과 온라인몰에 19개 K뷰티 브랜드를 선별한 ‘올리브영 K뷰티에딧’을 내놨다. 한국 시장에서는 세포라와 경쟁했던 올리브영이 미국에서는 세포라의 유통망을 활용해 K뷰티를 판매하는 협력자가 된 셈이다.
지난 10여 년간 K뷰티 유통의 중심은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로드숍에서 여러 브랜드를 연결하고 상품을 골라주는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올리브영이 국내 H&B 시장의 승자가 됐다고 해서 유통 경쟁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가격을 앞세운 다이소, 편의성을 앞세운 이커머스, 글로벌 소비자와 연결되는 해외 유통망이 동시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다음 경쟁은 누가 더 많은 화장품을 진열하느냐보다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처음 발견하고, 비교하고, 최종 구매하는 순간을 어느 채널이 차지하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거리에서 에뛰드의 간판이 사라진 자리를 올리브영이 메웠다면, 이제는 그 올리브영을 중심으로 다시 K뷰티 유통의 경계가 넓어지고 있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서강대 이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