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은 특별하지 않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고, 내가 건넨 마음이 상대에게도 같은 크기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영화 《옵세션》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커리 바커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2026년 9월 2일 국내 개봉한 미국 호러 영화로, 108분의 러닝타임 동안 사랑과 집착 사이의 경계를 불편할 정도로 가까이 들여다본다. 영화에서 베어는 오랜 시간 짝사랑해 온 니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원 위시 윌로’라는 물건을 이용해 소원을 빈다. 소원의 내용은 단순하다. 니키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처음만 보면 이 소원은 로맨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판타지처럼 보인다. 짝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나를 좋아하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옵세션》은 그 상상을 정반대의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 사랑이 이루어졌는데도 왜 무서운 것일까
사랑의 가장 위험한 부분은 ‘상대방의 마음’이다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사랑 자체를 무서운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나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다음 단계다. 내가 상대를 좋아한다는 사실과 상대 역시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자는 나의 감정이지만 후자는 상대의 감정까지 결정하려는 욕망이 되기 때문이다.
《옵세션》에서 베어가 빌었던 소원은 겉으로 보면 ‘사랑해 달라’는 부탁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빠져 있다. 니키가 스스로 베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베어의 소원에 의해 사랑하게 된다면 그 관계를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질문하게 된다. 여기서 영화의 공포가 시작된다. 공포영화에서 흔히 무서운 존재는 귀신이나 괴물이다. 하지만 《옵세션》이 만들어내는 불편함은 조금 다르다. 영화의 출발점에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조금씩 커져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얻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사랑한다’는 말만으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이상할 정도로 많은 행동이 허용되는 경우가 있다.
보고 싶어서 연락하고, 걱정돼서 확인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곁에 있고 싶다고 말한다. 이러한 행동은 상황에 따라 애정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계속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옵세션》은 이 차이를 극단적인 호러 장르로 보여준다. 영화 속 관계가 점점 뒤틀리는 과정에서 관객은 ‘사랑’이라고 부르던 행동이 어느 순간부터 상대에게는 압박이나 공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특정한 장면 하나가 아니라 감정의 기준이 한 사람에게만 맞춰지는 과정이다.
한 사람은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것을 '두려움'으로 느낄 수 있다. 한 사람에게는 '간절함'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같은 행동도 관계에 놓인 사람의 입장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영화는 이 차이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이 직접 불편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소원은 이루어졌지만, 원하는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옵세션》의 설정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소원’이라는 장치다. 소원은 보통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마법으로 등장한다.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다.
하지만 영화에서 소원은 정반대의 역할을 한다. 원하는 것을 얻는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영화의 질문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연인이 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사랑의 결과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을 얻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선택과 의사를 지워버린다면 그 관계는 과연 무엇으로 남을까. 영화는 이에 대한 답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베어가 겪는 상황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결과만 중요하다면, 그 사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이 질문은 영화 속 소원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반대편에는 거절이 있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거절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상대에게 선택받고 싶어진다. 그러나 모든 마음이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옵세션》은 이 당연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을 공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커리 바커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의 출발점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다룬 이야기였으며, 여기에 ‘소원’이라는 장치를 결합해 장편영화로 발전시켰다고 설명했다. 결국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소원 자체가 아니라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 있고, 때로는 상당히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선택을 없애버릴 수는 없다. 사랑은 상대방이 나를 선택할 자유까지 포함할 때 비로소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옵세션》은 초자연적인 설정을 사용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현실적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의 마음까지 소유할 수는 없다. 특히 영화는 사랑을 ‘성공해야 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것이 목표가 되는 순간 상대방은 한 사람의 주체가 아니라 내가 얻어야 할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소원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다. ‘상대가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욕망을 실제로 이루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관객이 영화관을 나와서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무서운 장면의 잔상이 아니라 오히려 이 질문일 수 있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
사랑은 상대를 원하는 감정이지만, 동시에 상대가 나를 원하지 않을 가능성까지 받아들이는 감정이기도 하다. 《옵세션》은 그 불편한 사실을 피하지 않고 공포의 형태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순간이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지 않고서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게 되는 순간이다.
《옵세션》은 결국 사랑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영화라기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하는 영화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 욕망이 상대방의 선택보다 중요해지는 순간 사랑은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그 얼굴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보여준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한국외대 김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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