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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람이 차면 아바타가 맞힌다...아시안게임에 뜬 ‘버추얼 태권도’

숙명여대
윤가은 숙명여대 · 프렌즈 1기
2026.09.20
VR 헤드셋을 쓰고 발차기하는 선수
VR 헤드셋을 쓴 선수가 발차기를 하고 있다. <World Taekwondo>

태권도 경기인데 남녀 구분도, 체급도 없다. 선수들은 상대에게 발차기를 하지만 상대방의 실제 몸에는 닿지 않는다. 대신 화면 속 아바타가 공격을 주고받는다. 19일 개막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버추얼 태권도’ 경기의 모습이다.

버추얼 태권도는 세계태권도연맹(WT)과 싱가포르 기술기업 리프랙트 테크놀로지스가 개발한 종목이다. 2023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올림픽 e스포츠 시리즈에서 처음 등장했고, 2024년 첫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는 지난 6월 버추얼 태권도의 2026 아시안게임 채택을 공식 승인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체육관에서 경기가 열린다.

● 상대를 때리지 않는 태권도, 승부는 어떻게 가릴까

경기장에 들어선 선수는 VR 헤드셋을 쓰고 등과 허벅지, 정강이 등에 동작 추적 센서를 착용한다. 선수가 발을 뻗거나 몸을 움직이면 센서가 움직임을 인식하고 화면 속 아바타가 이를 따라 한다. 두 선수가 같은 공간에서 경기를 펼치지만 서로의 몸을 직접 가격하지 않는 방식이다.

승부를 가리는 방식도 기존 태권도와 다르다. 버추얼 태권도는 상대의 ‘체력 게이지’를 깎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 라운드는 60초이며 상대의 체력 게이지를 먼저 모두 소진시키거나, 시간이 끝났을 때 자신의 체력 게이지를 더 많이 남긴 선수가 이긴다. 경기는 3전 2승제로 진행된다.

공격 부위에 따라서도 효과가 달라진다. 머리를 공격하면 몸통을 공격했을 때보다 두 배의 피해를 줄 수 있다. ‘스턴 게이지’라는 장치도 있다. 공격을 통해 상대의 스턴 게이지를 모두 채우면 상대는 3초 동안 공격을 피하거나 방어할 수 없다. 반면 주먹 공격은 체력 게이지를 직접 줄이지 않고 스턴 게이지에 영향을 미친다. 기존 태권도가 공격 부위와 기술에 따라 점수를 얻어 승부를 가린다면, 버추얼 태권도는 격투 게임처럼 상대의 체력을 얼마나 먼저 소진시키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화면 속 경기라고 해서 선수의 움직임까지 가상인 것은 아니다. 선수는 실제로 발차기와 회피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 오히려 상대와 직접 부딪히지 않기 때문에 공격을 주고받으며 잠시 거리를 벌리는 기존 겨루기와는 다른 움직임이 나타난다. AP통신이 취재한 선수와 지도자들은 버추얼 태권도에서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발차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버추얼 태권도 결승전
2023년 6월, 싱가포르 선텍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Olympic Esports Series 2023’ 버추얼 태권도 결승전

● 남자와 여자, 경량급과 중량급이 한 경기장에 선다

버추얼 태권도의 가장 큰 특징은 경기에서 남녀 체급을 나누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 태권도 겨루기는 체중에 따라 체급을 나누고 남녀 경기도 구분한다. 신체 접촉이 있는 만큼 체격 차이가 경기의 안전성과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버추얼 태권도에서는 선수끼리 직접 충돌하지 않는다. 이번 아시안게임 버추얼 태권도 역시 남녀가 함께 출전하는 혼성 경기로 진행되며 체급 제한이 없다.

그렇다고 현실의 신체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바타를 움직이는 것은 선수 본인이기 때문이다. 발차기의 속도와 정확성, 체력뿐 아니라 가상 공간에서 상대와의 거리를 판단하고 장비에 적응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싱가포르 대표 대런 얍은 기존 태권도와 비교했을 때 실제 사람이 아닌 아바타를 상대하기 때문에 상대와의 거리를 가늠하고 시스템과 장비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태권도 실력이 그대로 버추얼 태권도 실력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베트남 국가대표 출신 응우옌 타인 히엔 린은 2024년 처음 버추얼 태권도를 접했을 당시 전략과 기술, 장비 활용법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버추얼 태권도를 별도로 익힌 그는 올해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기존 태권도의 신체 능력에 가상 공간을 읽고 활용하는 새로운 능력이 더해진 것이다.

안향식 선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겨루기와 버추얼 태권도에 출전하는 안향식 선수

● 도복 입고 겨루고, 헤드셋 쓰고 다시 겨루는 안향식 선수

새로운 종목의 등장은 선수에게 새로운 메달 기회도 만들었다. 한국 대표 안향식(용인대)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기존 겨루기 남자 58㎏급과 버추얼 태권도 두 종목에 출전한다. 기존 아시안게임 태권도에서는 한 선수가 하나의 체급에 출전하기 때문에 한 대회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획득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체급과 성별 구분이 없는 버추얼 태권도가 추가되면서 기존 겨루기와 버추얼 태권도에 동시에 출전하는 길이 열렸다. 안향식이 두 종목에서 모두 우승하면 한국 태권도 선수 최초의 아시안게임 단일 대회 2관왕이 된다.

다만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도 버추얼 태권도에는 경험이 많지 않다. 안향식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버추얼 태권도 훈련을 시작한 지 4~5개월 정도라고 밝혔다. 반면 2024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세계태권도버추얼선수권대회에서는 개최국 싱가포르가 5개 부문 가운데 4개의 금메달을 차지했다. 안향식 역시 아시안게임 출전 선수들과 함께 훈련한 뒤 일부 해외 선수들이 버추얼 태권도를 전문적으로 훈련해 자신보다 경험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오전에는 버추얼 태권도, 오후와 저녁에는 기존 겨루기를 훈련하며 두 종목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이 오랫동안 경쟁력을 보여온 태권도에 디지털 기술이 결합되면서, ‘태권도 종주국’이라는 기존의 강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경쟁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버추얼 태권도 공식 경기
2023 Olympic Esports Series 버추얼 태권도 공식 경기 <IOC>

● e스포츠와도 다른 ‘버추얼 스포츠’

VR 헤드셋을 쓰고 아바타의 체력 게이지를 깎는 모습만 보면 버추얼 태권도는 격투 게임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버추얼 태권도는 e스포츠 종목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대회 공식 홈페이지 역시 겨루기와 품새에 이어 버추얼 태권도를 태권도의 한 종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버추얼 태권도와 일반적인 e스포츠는 캐릭터를 조작하는 방식부터 다르다. 일반적인 e스포츠에서는 키보드와 마우스, 컨트롤러 등을 이용해 캐릭터를 조작하지만 버추얼 태권도에서는 선수의 실제 발차기와 움직임 자체가 입력 수단이 된다. 화면 속에서 승부가 결정되지만 그 화면을 움직이는 것은 선수의 몸이다.

버추얼 태권도는 불과 몇 년 사이 체험형 기술에서 국제 종합스포츠대회의 정식 종목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16명의 선수가 하나의 금메달을 두고 경쟁한다. 남자부와 여자부, 경량급과 중량급을 나누던 기존 태권도의 기준 대신 성별과 체중이 다른 선수들이 같은 경기장에서 아바타를 앞세워 맞붙는다. 스포츠가 게임이 된 것일까, 게임 기술이 스포츠 안으로 들어온 것일까. 화면 속 아바타가 아시안게임 메달을 두고 겨루는 시대, 스포츠를 정의하는 기준도 새롭게 쓰이고 있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숙명여대 윤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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