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전국의 열대야 일수는 9.7일. 최근 30년간 기후 평균값의 3.5배로 역대 가장 많았다. 사람들은 낮의 폭염을 피해 밤을 기다렸지만, 밤마저 시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록적인 더위가 바꾼 것은 기온만이 아니었다. 가까운 편의점조차 나가지 않고 배달시키는 사람이 늘어나는 한편, 해가 진 뒤 운동하고 먹고 즐기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서울시는 아예 축제 시간을 밤 10시까지 늦추고 야간 러닝을 만들었다. 골목에는 야외 테이블을 놓은 ‘야장’을 조성하고 2028년까지 25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올여름 더위를 피해 달라진 사람들의 하루가 이제 하나의 시장이 되고 있다.
● 폭염이 바꾼 사람들의 생활패턴
올여름 폭염은 소비 시간대와 장소를 바꿔놓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연평균 폭염일수는 과거 10년보다 약 2.2배, 열대야일수는 약 3배로 늘었다. 특히 올해 7월 전국 열대야일수는 역대 1위를 기록했다.
더위가 심해지자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소비 공간인 편의점에도 직접 걸어가는 대신 배달을 선택했다. 서울에서 열대야가 이어진 7월 22일부터 8월 7일까지 CU의 배달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88.4% 늘었다. 같은 기간 GS25의 퀵커머스 매출은 143.5%, 세븐일레븐은 112% 증가했다. CU에서는 아이스크림 배달 매출이 658.1%, 컵얼음은 443.8% 뛰었다.
산업통상부의 7월 유통업체 매출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다. 온라인 매출 증가율은 8.5%로 오프라인 3.2%보다 높았다. 폭염을 피해 냉방시설이 갖춰진 대형 쇼핑시설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늘었다. 8월 초 버거킹의 쇼핑몰·마트·백화점 입점 매장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 증가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계속 실내 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밖에 나가는 시간을 바꾸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서울시는 지난 8월 28일 오후 7시부터 양재천과 여의천 5.8㎞를 달리는 ‘달빛야행런’을 처음 열었다. 300명의 참가자는 밤에 달린 뒤 인근 카페거리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권사랑 쿠폰을 받았다. 서울시는 10월 말까지 광화문·반포·여의도에서도 매주 목요일 오후 7~9시 러닝크루를 운영한다.
● 밤에 운동하고 나면 받는 쿠폰
밤에 달리는 사람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새로운 경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목할 부분은 운동이 주변에서 돈을 쓰게 만드는 장치와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의 첫 야간 러닝 프로젝트가 열린 곳은 대형 경기장이 아니라 양재천이었다. 코스 주변에는 수변문화쉼터와 카페거리가 있다. 참가자에게 제공된 것도 단순 완주 기념품만이 아니었다. 달리기를 마친 참가자에게 주변 상점에서 쓸 수 있는 ‘양재천길 상권사랑 쿠폰’을 지급했다. 운동을 마친 사람의 발걸음이 주변 상권으로 이어지도록 기획한 것이다.
다른 공간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서울의 대표 야간 관광 콘텐츠인 ‘서울달’은 8월부터 10월까지 금·토요일 운영시간을 기존 오후 10시에서 11시까지 한 시간 늘렸다. 이미 누적 이용객이 10만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서울시는 늦은 시간까지 관광객이 머물도록 해 여의도와 한강공원의 소비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잠수교도 한 시간을 더 쓴다. 9월 6일부터 시작한 가을 ‘차 없는 잠수교 뚜벅뚜벅 축제’는 기존보다 종료시간을 한 시간 늦춰 오후 10시까지 운영한다. 푸드트럭과 플리마켓, 체험 프로그램 등도 함께 들어선다. 서울시는 운영시간을 늦춘 이유로 ‘야간경제 활성화’를 명시했다.
야간 러닝, 한강의 야경, 축제는 서로 다른 프로그램처럼 보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을 밤까지 밖에 머물게 하고, 해당 시간대에 주변의 식당, 카페, 상점에서 소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이 얼마나 오래 머무는가’가 상권에 영향을 미친 사례도 있다. 올해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린 서울숲, 성수 일대에서 서울시가 체류인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인근 상권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1.5%, 생활인구는 20.4% 증가했다. 야간경제가 주목하는 것도 이런 ‘체류시간’이다.
● 골목의 밤 만들기 위해 ‘20억 원’ 투자하는 서울시
지난 14일 서울시는 ‘서울 달빛야장’ 대상지를 선정하기 위한 최종 평가를 진행했다. 15개 자치구 19개 상권이 사업에 참여했다. 서울시는 올해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28년까지 달빛야장을 25곳으로 늘리고, 선정 상권에는 환경 개선부터 콘텐츠 개발과 브랜딩까지 최대 2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야장’은 가게 밖에 테이블을 놓고 음식을 먹는 문화를 뜻한다. 종로3가나 을지로처럼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된 야장 문화를 서울시가 제도권 안으로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보행 안전이 확보된 곳에서는 도로점용과 옥외영업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서울시가 러닝이나 축제를 넘어 골목의 테이블에까지 주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서울형 야간경제’의 시간은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다. 이 시간에 체육·문화, 관광, 상권뿐 아니라 교통과 안전까지 함께 연결하겠다는 계획이다. 체육시설 269곳의 야간 운영 확대, 생활권 야간명소 25곳 조성 등도 포함됐다.
● 누군가의 여가시간은 누군가의 수면시간
하지만 밤의 시간이 길어진다고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야장이 늘어나면 식당에는 손님이 늘 수 있지만 바로 위층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소음이 늘어난다. 늦은 시간까지 관광객이 머무르면 주변 상권에는 기회가 되지만 교통, 쓰레기, 치안 문제도 함께 따라온다.
실제로 서울시가 달빛야장 대상지를 평가하면서 사업성만 본 것도 아니다. 영업시간과 소음, 청결에 관한 관리수칙을 마련하고 주민과 상인이 상생협약을 맺도록 했다. 기존 야장 지역에서 소음과 쓰레기, 보행 불편 등을 둘러싼 갈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야간경제가 커질수록 생각해야 할 사람들도 있다. 바로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다. 식당이 늦게까지 문을 열고, 축제가 밤까지 이어지고, 대중교통과 청소·안전 서비스가 함께 연장되려면 그 시간에 일하는 노동자가 필요하다. 야간경제를 단순히 영업시간을 몇 시간 늘리는 문제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결국 밤 11시는 모두에게 같은 시간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운동을 마치고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소비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잠에 들어야 하는 시간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다.
● 밤이 길어지는 만큼 놓치면 안되는 것들
야간경제를 활성화하려면 밤에 즐길 거리를 늘리는 것만큼 이를 뒷받침할 환경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늦은 시간까지 사람이 모이는 지역에는 대중교통과 안전 관리가 필요하고, 야장이 들어서는 주거지역에서는 영업시간과 소음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해 주민의 생활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밤에 일하는 사람들도 고려해야 한다. 상점과 축제의 운영시간이 늘어나면 서비스, 청소, 안전, 교통 분야의 노동시간도 함께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간 운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적정 인력을 확보하고 근무시간과 휴식시간을 관리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야간경제가 일시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고 도시의 일상으로 자리 잡으려면 밤을 소비하는 사람뿐 아니라 해당 시간에 생활하고 일하는 사람까지 고려하는 운영 방식이 필요하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숙명여대 윤가은]
댓글 작성 시 입력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