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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차보다 느린데 왜 필요할까? 고속버스의 새로운 생존법

서울시립대
이아진 서울시립대 · 프렌즈 1기
2026.09.25
청주시외버스터미널
청주시외버스터미널 <사진=연합뉴스>

● 다음 버스는… 2시간 뒤입니다

한때 고속버스의 장점은 분명했다. 기차보다 느려도 비교적 저렴했고, 철도가 닿지 않는 지역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도로 정체로 도착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기존의 약점에 가격 경쟁력까지 흔들리고 있다. 일부 구간에서는 프리미엄 고속버스 요금이 KTX보다 비싸지는 가격 역전 현상까지 나타난다.

그 사이 버스 자체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국내 시외·고속버스 노선은 3,203개로 10년 전보다 약 30% 감소했다. 특히 철도가 없는 지역에서는 배차가 줄어들수록 다음 버스를 몇 시간씩 기다리거나, 막차 시간에 맞춰 일정을 바꿔야 한다. 버스 한 대의 감소가 곧 이동할 수 있는 선택지 하나의 감소가 되는 셈이다.

● 묵호는 그대로인데, 묵호가 가까워졌다

교통이 줄어드는 것의 영향은 이용객 수에서 끝나지 않는다. 여행지를 고를 때 비슷한 매력이라면 환승을 여러 번 해야 하는 곳보다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에 손이 가기 때문이다. 반대로 2020년 강릉선 KTX가 동해까지 연장되면서 수도권에서 묵호·동해까지 환승 없이 이동할 수 있게 됐고, 이는 묵호역 이용객 증가와 함께 주변 관광지와 시장으로의 방문도 이어졌다. 그렇다고 묵호에 없던 바다가 새로 생긴 것도, 시장이 갑자기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그곳까지 가는 일이 쉬워졌다는 점이다.

교통은 지역의 매력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이미 있던 매력을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 그곳에 얼마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지를 뜻하는 '접근성’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버스 노선 하나 역시 어떤 지역을 사람들의 선택지 안에 넣거나, 밖으로 밀어낼 수 있는 셈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비야 등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렌페(Renfe) 기차
스페인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비야 등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렌페(Renfe) 기차

● 기차에서 내렸는데,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모든 지역에 철도를 새로 놓을 수는 없다.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것이 스페인의 방식이다. 이들은 버스와 기차를 경쟁시키는 대신 둘을 하나의 이동 과정으로 묶었다.

스페인 철도회사 렌페(Renfe)와 버스회사 알사(Alsa)는 주요 도시까지는 기차로 이동하고, 철도가 닿지 않는 지역부터 버스로 이어지도록 연계 서비스를 운영한다. 또한 일부 구간은 기차와 버스를 하나의 티켓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며, 버스가 기차의 느린 대체재가 아닌 철도가 끝난 곳에서 이동을 이어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 기차보다 느린 버스가 필요한 이유

고속버스는 정말 기차보다 빠르고 저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다. KTX가 들어온 뒤 묵호가 수도권에서 훨씬 쉽게 찾을 수 있는 여행지가 된 것처럼,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른 교통수단이냐보다 어디까지 사람을 연결할 수 있느냐일 수 있다. 스페인이 기차가 멈춘 곳에서 버스를 이어 붙인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나라 역시 철도와 버스를 하나의 이동 과정으로 연결한다면 고속버스가 맡을 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고속버스 한 대가 사라지는 것은 배차표에서 한 줄이 없어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갈 만한 지역’이었던 곳이 ‘가기 어려운 지역’으로 바뀌는 일일 수도 있다. 기차보다 빠를 수 없다면, 기차가 가지 못하는 곳까지 이어주는 것. 앞으로 고속버스가 찾아야 할 경쟁력은 속도가 아니라 지역과 사람 사이의 연결에 있을지 모른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서울시립대 이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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