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27회 세계지식포럼의 주제는 ‘프로메테우스의 순간: 공존지능을 설계하라’였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며 문명의 변화를 이끌었듯, 오늘날 인공지능(AI) 역시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일자리, 불평등, 인간과 기계의 관계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세계지식포럼에서 AI와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 반세기를 관통한 통찰, “여전히 유전자가 선택의 단위다”
올해는 그의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가 출간된 지 50년이 되는 해다. 50년 전 도킨스는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를 개체가 아닌 ‘유전자’로 바라보며 진화를 설명했다. 이번 대담에서도 그는 당시 제시한 ‘유전자가 선택의 단위’라는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며,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50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 그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제시한 또 다른 개념인 ‘밈(meme)’ 역시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밈은 사람의 모방을 통해 전달되는 문화적 정보다. 하나의 이미지나 문구가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복제되고,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는 모습은 정보가 생명체처럼 퍼지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제는 AI가 그 과정에 들어왔다. AI는 인간이 만든 정보를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글과 이미지 등을 만들어낸다. 도킨스가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복제와 진화’라는 관점에서 AI를 바라볼 수 있는 이유다.
● “AI와 대화는 충격이었다… 의식,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도킨스는 AI를 직접 사용해본 경험도 소개했다. 그는 ChatGPT와 클로드에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고 작품과 등장인물을 분석하게 했으며, 서로 다른 작가의 문체를 활용해 시를 쓰게 하기도 했다. 단순히 정보를 찾거나 코드를 작성하는 것을 넘어 문학적인 작업에서도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결과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가 특히 관심을 보인 것은 AI의 의식에 대한 문제였다. 도킨스는 현재의 AI를 보며, AI 역시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의식을 가질 가능성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AI가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그때 AI의 의식을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다.
도킨스는 미래에 외계 문명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그 존재가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라 인류가 남긴 AI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AI가 인류의 지식과 문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 기술 경쟁의 홍수 속에서, 과학이 지녀야 할 태도
AI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킨스가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강조한 부분이었다.
그는 과학이 어려운 말을 사용해 권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찰스 다윈 역시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명확하게 전달하려 했다는 것이다. 과학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가 발전하면서 정보가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속도는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빨라지고 있다. 유전자와 밈을 통해 이어져 온 정보의 복제와 변화가 이제 AI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올해 세계지식포럼의 주제인 ‘프로메테우스의 순간’도 이런 변화와 연결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며 문명의 변화를 이끌었듯, AI 역시 인간이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50년 전 도킨스는 유전자를 통해 생명의 진화를 설명했고, 지금은 AI가 만들어낼 또 다른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유전자에서 밈으로, 그리고 AI로 이어진 정보의 변화가 앞으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기술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지금, 그 가능성만큼이나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살피고 인간과 AI가 어떻게 공존할지 고민해야 한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세종대 신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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