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의 시선은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유가 요동에 쏠려 있다. 중동 정세 불안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될 때마다 유가 상승과 글로벌 물류 차질에 대한 우려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하지만 정작 글로벌 무역의 실핏줄을 죄어오는 진짜 치명적인 위기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조용히 심화되고 있다. 바로 극심한 가뭄으로 말라붙고 있는 '파나마운하' 이야기다.
● 담수 고갈이 불러온 물류 멈춤, 수백만 달러 경매 전쟁까지
세계 해상 물동량의 약 5%가 지나는 파나마운하는 바닷물이 아닌 인근 가툰 호수(Gatun Lake)의 담수를 이용해 선박을 띄운다. 하지만 태평양 수온 상승이 초래한 엘니뇨 현상으로 강수량이 급감하면서 운하의 수자원이 빠르게 고갈되었다. 이에 파나마운하청은 일일 통과 선박 수를 줄이고 선박이 실을 수 있는 화물 무게(흘수)까지 제한하는 단계적 통항 축소에 들어갔다.
통항 대기 기간이 일주일 이상 길어지자 지연을 피하기 위한 '우선 통항권' 낙찰가가 400만 달러(약 55억 원)까지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견디다 못한 선박들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서 가는 40일 이상의 장거리 우회 항로를 선택하고 있다.
● 미국 내륙 물류부터 한국 대미 수출까지 흔드는 나비효과
이러한 물류 차질은 주요국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파나마운하 이용률 1위이자 전체 컨테이너 수입량의 40%를 이에 의존하는 미국 경제에는 비상이 걸렸다. 운하를 피하기 위해 미국 서부 항구로 화물이 몰리면서 대륙횡단 철도와 트럭 운송비가 급등했고, 원료의약품·전자제품·농산물 등 소비재 전반의 가격 인상을 부채질하는 '나비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부산항에서 미국 동부로 향하는 화물의 운송 기간이 기존 24~30일에서 최대 45일까지 늘어나고, 운하 할증료와 체선료 등 추가 비용이 최대 45%까지 불어나며 대미 수출 기업들의 부담이 극에 달하고 있다.
● 타협 가능한 '지정학' 대 타협 불가능한 '기후위기'
무역 전공자나 현업 종사자가 아니면 잘 체감하지 못하지만, 파나마운하 사태가 지닌 본질적인 위험성은 그 '불가피성'에 있다. 전쟁이나 분쟁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는 인류의 정치적 외교와 타협을 통해 해결할 여지라도 존재한다. 반면 자연재해와 기후변화는 인간이 협상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영역이다. 건기가 지속되는 한 수위 회복을 기약하기 어렵고, 신규 저수지 개발 등 인프라 확충에도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가뭄발 공급망 병목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 막연한 불안감을 넘어 실질적 공급망 대안과 관심이 필요할 때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앞의 정치적·지정학적 뉴스에만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던지는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파나마운하 사태는 기후위기가 더 이상 미래의 환경 문제가 아니라 당장 우리 식탁의 물가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현재의 경제 문제'임을 증명한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이 거대한 파고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단순한 우려를 넘어 실질적인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전문가들의 제언처럼 납기가 시급한 제품은 미 서부 항구를 통한 대륙횡단철도를 활용하고, 범용재는 우회 노선을 활용하는 등 '물류 경로의 이원화(Two-Track) 전략'을 정교화해야 한다. 나아가 지정학적 변수뿐만 아니라 '기후 리스크'를 국가 공급망 관리 모델에 필수 변수로 포함시키는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결단이 시급한 시점이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명지대 이수진]
댓글 작성 시 입력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