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동작과 짧은 순간의 착지가 승부를 결정하는 기계체조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선수들에게는 극도의 집중력과 반복적인 훈련이 요구되는 종목이다. 한 번의 실수가 메달의 색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은 경기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훈련에 투자한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기계체조가 다시 한 번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여자 기계체조에서는 여서정과 황서현이 각각 도마와 평균대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의미 있는 기록을 만들었다.
● 8년 만에 다시 정상에 선 여서정
가장 먼저 금빛 소식을 전한 선수는 여서정이다. 여서정은 9월 24일 일본 나고야 레인보우홀에서 열린 여자 기계체조 도마 결선에서 14.483점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북한의 안창옥이 13.666점으로 은메달, 중국의 두쓰위가 13.450점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번 금메달은 여서정에게 더욱 특별하다. 그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도마 금메달을 차지한 바 있으며, 이번 대회에서 8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올랐다. 아시안게임 도마 정상에 두 차례 오른 셈이다. 특히 이번 도전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반복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여서정은 부상을 겪은 뒤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왔고, 결선에서는 가장 높은 난도의 기술만을 선택하기보다 안정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기술을 선택했다. 어려운 기술에 도전하는 것보다 실수를 줄이고 완성도를 높이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기계체조에서는 난도가 높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동시에 실수할 위험도 커진다. 결국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어려운 기술을 수행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자신의 컨디션과 경기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여서정의 이번 금메달은 이러한 판단과 경험이 결과로 이어진 사례라고 볼 수 있다.
● 평균대에서 만들어낸 40년 만의 기록
여서정의 금메달에 이어 황서현도 의미 있는 기록을 만들었다. 황서현은 9월 25일 여자 평균대 결선에서 14.700점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가 아시안게임 평균대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1986년 이후 40년 만이다. 평균대는 폭이 좁은 기구 위에서 점프와 회전, 균형 동작 등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큰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종목이다. 실제로 이번 결선에서도 여러 선수들이 실수를 했지만 황서현은 큰 흔들림 없이 연기를 마무리하며 정상에 올랐다.
황서현은 16세의 어린 나이에도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줬다.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참가한 결선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국 여자 기계체조를 이끌 선수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줬다. 이번 금메달은 단순히 한 선수의 우승을 넘어 오랫동안 이어지지 못했던 한국 평균대 금메달의 역사를 다시 이어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 한국 기계체조, 세대교체의 과정에 서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주목할 부분은 여서정과 황서현의 나이와 경험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여서정이 오랜 국제대회 경험을 가진 선수라면 황서현은 앞으로 더 많은 국제무대 경험을 쌓아갈 선수다. 두 선수의 활약은 한국 기계체조가 한 명의 스타 선수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의 선수들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남자 기계체조에서도 류성현과 김재호 등이 결선에 진출하며 경쟁력을 보여줬다. 류성현은 마루운동과 철봉 결선에 진출했고, 한국 남자 대표팀은 단체전 예선을 3위로 통과하며 8년 만의 단체전 메달에 도전했다.
대회를 앞두고 한국 기계체조 대표팀은 남녀 금메달 각 1개와 여자 단체전 3위 이상을 목표로 내세웠다. 여서정과 황서현의 금메달로 개인 종목에서 목표를 달성하면서 한국 기계체조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 ‘완벽한 동작’ 뒤에 숨은 선수들의 시간
기계체조는 경기 장면만 보면 몇 분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종목처럼 보인다. 하지만 선수들이 실제로 경기장에 서기까지는 수많은 반복 훈련과 실패의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평균대나 도마처럼 한 번의 실수가 점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종목에서는 기술을 익히는 것뿐 아니라 실수를 줄이는 훈련도 중요하다. 선수들은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몸에 익히고, 경기에서 긴장하더라도 기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여서정 역시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가장 어려운 기술만을 고집하지 않고 성공 가능성과 안정성을 고려한 선택을 했다. 이는 기계체조가 단순히 힘과 유연성만으로 승부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경험과 판단력까지 필요한 종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 메달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장면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기계체조가 얻은 성과는 금메달의 숫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여서정은 부상을 이겨내고 다시 정상에 올랐고, 황서현은 40년 동안 이어지지 못했던 평균대 금메달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두 선수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성공이 아니라 그 성공을 만들어내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했는가에 있다. 기계체조는 아주 작은 실수가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종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이 보여주는 완벽한 착지 한 번에는 수없이 반복된 훈련과 실패, 그리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여서정과 황서현이 보여준 모습은 한국 기계체조가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8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오른 선수와 40년 만에 새로운 역사를 만든 선수가 같은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냈다는 사실은 한국 기계체조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보여주는 장면이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한국외대 김민서]
댓글 작성 시 입력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