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10-24 12:48 (토)
IT/기술

판단형 AI 제브(Jev), 한국어 눈치까지 빠를까

동국대
이태민 동국대 · 프렌즈 1기
2026.09.28

"해지까지는 생각 없는데요, 요금만 좀 확인하고 싶어요"

사람이라면 이 말에 해지 절차를 밟지 않는다. '해지'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도 뜻은 반대라는 걸 안다. 최근 미국에서 화제가 된 AI 모델 '제브(Jev)'도 이 문장을 '해지 원하지 않음' 99%로 판단했다. 하지만 속뜻을 숨긴 몇몇 한국어 문장에서는 같은 뜻의 영어 문장과 다른 답을 내놨다. 본 기사에서는 제브에 같은 뜻의 한국어·영어 문장 10쌍을 직접 넣어 판단이 같은지 비교했다.

제브에 '해지까지는 생각 없는데요' 문장을 넣은 결과. 선택지에 따른 확률이다.
제브에 '해지까지는 생각 없는데요' 문장을 넣은 결과. 선택지에 따른 확률이다. <Throk의 Jev 무료체험 화면>

● 글을 쓰지 않는 AI, 제브(Jev)

제브는 미국 스타트업 타입세이프AI가 9월 15일 공개한 모델이다. 창업자 디오고 알메이다는 오픈AI에서 챗GPT의 기반이 된 학습 기법 개발에 참여한 인물로, 회사는 공개와 함께 4000만 달러 투자 유치를 발표했다.

챗GPT 같은 기존 AI는 질문을 받으면 문장을 써서 답한다. 제브는 문장을 쓰지 않는다. 개발자가 "이 문의는 결제, 기술, 해지 중 무엇인가"처럼 선택지를 정해주면, 그중 하나를 고르고 선택지마다 확률을 붙여 돌려준다. 사람이 읽을 답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바로 받아 쓰는 값을 내놓는다.

● 장점 : 빠르고, 싸고, 확신 정도를 숫자로 준다

글을 쓰는 과정을 건너뛰기에 빠르고 싸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회사는 응답 시간이 0.07~0.5초, 가격은 입력 100만 토큰(AI가 글을 읽고 과금하는 단위)당 0.042달러라고 밝혔다. 정해진 선택지 밖의 답은 낼 수 없어, 답의 형식이 어긋나 생기는 오류도 줄일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확신 정도를 숫자로 준다는 점이다. 회사는 확신이 높으면 자동으로 처리하고, 낮으면 사람에게 넘기는 식으로 쓰라고 안내한다. 다만 이 숫자가 곧 정답률을 뜻하지는 않는다. 반응도 뜨거웠다. 회사는 20일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문을 열었지만, 이틀 뒤인 22일 수요 폭증을 이유로 신규 가입을 일시 중단했다.

타입세이프 AI 홈페이지의 신규 가입 중단 안내
타입세이프 AI 홈페이지의 신규 가입 중단 안내 <타입세이프 AI 캡처>

● 단점 : 틀릴 수 있고, 검증되지 않았고, 영어 중심이다

회사는 '환각이 없다'고 홍보하지만, 이는 정해진 선택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선택지 안에서 틀린 답을 고를 가능성은 여전히 있으며 속도 역시 회사가 직접 잰 값이다. 해외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기존에도 있던 분류 모델과 무엇이 다르냐는 반론도 나온다.

타입세이프도 공식 문서에서 제브가 문장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간접적인 표현에는 덜 정확하다고 밝혔다. 언어의 벽도 있다. 문서에 따르면 제브의 주 학습 언어는 영어이며, 한국어를 포함한 동아시아 문자는 처리하지만 영어만큼 정확하지는 않다.

그래서 언어에 따라 제브의 답과 확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한국어 특유의 돌려 말하기에는 어떤 답을 내는지 직접 시험해봤다.

● 고객센터 문장 10개, 한국어와 영어로

실험에 쓴 Throk의 Jev 무료 체험 도구
실험에 쓴 Throk의 Jev 무료 체험 도구 <Throk 홈페이지 캡처>

신규 가입이 막혀 있어, 가입 없이 제브를 써볼 수 있게 해둔 제3자 서비스 Throk의 무료 체험 도구를 이용했다. 도구의 '댓글 분류' 템플릿에서 질문과 선택지를 바꿔 썼고, 실험은 9월 27일 진행했다.

질문은 "이 고객은 서비스 해지를 원하나요?" 하나로 고정했으며, 선택지는 세 개다. 해지 의사가 분명하면 '원함', 해지 의사가 없거나 다른 목적의 문의면 '원하지 않음', 조건부이거나 고민 중이라 판단하기 어려우면 '불분명'이다.

질문 설정 화면 / 모든 문장에 같은 질문과 선택지를 썼다
질문 설정 화면 / 모든 문장에 같은 질문과 선택지를 썼다 <직접 촬영>

고객센터에서 나올 법한 한국어 문장 10개를 만들어 해지를 직접 요청하는 문장부터 조건을 건 경고, 비꼬는 말, 떠보는 말까지 섞었다. 영어 문장은 AI 번역을 활용해 한국어 원문에 가깝게 옮겼고, 질문과 선택지도 영어로 바꿔 같은 방식으로 넣었다. 다만 번역 과정에서 문장 구조와 뉘앙스가 달라질 수 있다.

돌려 말하는 문장은 사람끼리도 해석이 갈릴 수 있기에 정답은 정하지 않았으며, 대신 같은 한국어와 영어 질문을 각각 넣어 결과를 비교했다. 10쌍의 소규모 실험이고, 제브에 직접 접속하지 않고 Throk을 거쳤다는 한계가 있다.

● 10쌍 중 7쌍은 같은 답, 3쌍은 달랐다

한국어·영어 10쌍 결과 정리표. 확률은 세 선택지 중 가장 높은 값이며, 음영은 두 언어의 답이 갈린 문장이다. 표의 수치는 모델이 선택지에 붙인 확률로, 실제 정답률은 아니다
한국어·영어 10쌍 결과 정리표. 확률은 세 선택지 중 가장 높은 값이며, 음영은 두 언어의 답이 갈린 문장이다. 표의 수치는 모델이 선택지에 붙인 확률로, 실제 정답률은 아니다 <직접 제작>

해지를 직접 요청하거나 분명히 부정하는 문장, 조건이나 고민이 겉으로 드러난 문장 7쌍에서 제브는 두 언어 모두 같은 답을 골랐다. 답이 갈린 건 다음 세 문장이다.

- 3번 "서비스 참 훌륭하네요^^ 덕분에 다른 데 알아보는 중입니다." 영어는 '원함' 70%, 한국어는 '불분명' 75%.

- 6번 "해지 안 되는 거 아니죠? 그냥 궁금해서요." 영어는 '불분명' 84%, 한국어는 '원하지 않음' 75%.

- 9번 "그만 쓰고 싶은 건 아닌데 너무 비싸서요." 영어는 '불분명' 49%, 한국어는 '원하지 않음' 81%.

세 문장 모두 적힌 말과 전하려는 뜻이 다를 수 있다. 특히 6번과 9번에서 한국어 판단은 "그냥 궁금해서요", "그만 쓰고 싶은 건 아닌데"처럼 문장에 적혀 있는 말에 가까웠다. 회사가 밝힌 '문자 그대로 읽는' 경향의 모습인데, 이 두 문장에서는 한국어에서만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같은 과제에서 언어에 따라 답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 속뜻을 보라고 지시하자

질문 끝에 한 문장을 추가했다. "반어나 돌려 말하기처럼 겉말과 속뜻이 다르면 속뜻을 기준으로 판단하세요." 그리고 답이 갈린 한국어 세 문장을 한 번씩 다시 넣었다.

3번은 '원함' 42%, '불분명' 41%로 두 선택지가 비슷해졌다. 6번은 1위 답('원하지 않음' 75%)은 그대로였지만, '원함'이 1%에서 16%로 올랐다. 9번은 답은 같았지만 확률이 62%로 낮아졌다.

●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넣으면

9번 한국어 문장을 같은 질문과 선택지로 다섯 번 더 넣었다. 다섯 번 모두 '원하지 않음'을 골랐지만, 그 확률은 74%에서 85% 사이로 매번 달랐다.

9번 문장을 다시 넣어 화면으로 남긴 다섯 번 가운데 세 번
9번 문장을 다시 넣어 화면으로 남긴 다섯 번 가운데 세 번 <직접 촬영>

● 말과 뜻이 다를 때

"해지까지는 생각 없는데요"는 제브도 알아들었다. 말과 뜻이 같은 문장이었다. 언어에 따라 답이 갈린 건 속뜻을 숨긴 문장들이었다. 비꼬는 칭찬, 떠보는 질문, 아니라면서 슬쩍 꺼낸 가격 이야기. 사람 상담원이라면 한 번쯤 되물었을 법한 것들이다.

제브를 향한 관심은 이미 뜨겁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출시 영상은 X에서 약 4000만 회 재생됐고, AI 개발 플랫폼 버셀(Vercel)은 제브가 자사 AI 게이트웨이에서 역대 가장 빠르게 채택된 모델이라고 밝혔다.

제브라는 이름은 효율이 오를수록 소비가 오히려 늘어난다는 '제번스의 역설'에서 따왔다. 그 역설대로라면 판단이 싸질수록 AI가 쓰이는 곳도 늘어날 테고, 언젠가는 고객센터에 남긴 우리의 말을 사람보다 AI가 먼저 읽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한국어에는 말 밖의 속뜻을 알아채는 힘을 부르는 단어가 따로 있다. 눈치다. 0.5초 안에 답한다는 제브가 한국어의 눈치까지 빠른지는, 이번 열 문장으로는 가릴 수 없었다. 분명한 건 같은 뜻의 말도 영어로 했을 때와 다른 답이 돌아온 문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제브가 한국어에서도 영어만큼의 판단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앞으로 더 검증돼야 할 것이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동국대 이태민]

#제브 #Jev #판단형AI #타입세이프AI #한국어AI #매경플러스프렌즈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