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을 알리고 구매를 이끄는 것. 우리가 생각해온 마케팅의 모습은 대체로 이랬다. 브랜드는 신제품의 특징과 장점을 보여주고, 소비자는 광고를 본 뒤 제품을 선택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익숙했던 공식에서 벗어난 마케팅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광고를 하나의 콘텐츠처럼 만들고, 전혀 다른 분야와 손을 잡는가 하면 소비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품을 경험하게 하기도 한다. 이제 브랜드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방법은 제품을 얼마나 잘 설명하느냐에만 머물지 않는다.
2026년, 브랜드들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소비자와 만나고 있을까.
● 광고가 콘텐츠가 됐다
요즘에는 광고를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는 경우가 생긴다. 최근 에픽하이가 공개한 콘서트 포스터가 대표적이다. 포스터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이른바 ‘깐부 회동’을 패러디해 화제를 모았다. 공연 일정과 장소를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기사처럼 구성한 패러디 이미지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가 된 것이다. 멤버들이 직접 인물로 분장해 촬영했다는 비하인드까지 공개되면서 포스터를 둘러싼 관심도 이어졌다.
K팝 프로모션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난다. TXT 연준은 솔로 미니 2집 ‘NO LABELS: PART 02’의 타이틀곡 ‘Ice Cream’을 홍보하면서 아이스크림을 주제로 한 체험형 프로모션을 선보였다. 성수동 행사에서는 아이스크림을 활용한 게임과 영상 챌린지를 진행했고, 사흘 동안 약 1350명이 방문했다. 관련 이용자 생성 콘텐츠도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증가했다. 온라인에서는 직접 아이스크림을 조합해보는 ‘Ice Cream Generator’도 선보여 신곡의 사운드를 놀이처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최근의 프로모션은 제품이나 공연의 정보를 전달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간다. 한 번 보고 지나치는 광고보다 직접 웃고 참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관심을 붙잡는 방식이다.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광고를 보여주는 것에서, 소비자가 먼저 콘텐츠를 찾아보고 주변에 퍼뜨리게 만드는 쪽으로 홍보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 브랜드가 엉뚱한 곳에서 만난다
요즘 브랜드 협업은 비슷한 업종끼리 손을 잡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7월 스포츠웨어 브랜드 룰루레몬은 서울 중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요가 캠페인 ‘스페이스 투 필’을 열었다. 요가 수업에만 집중한 행사가 아니라 음악·무용·빛·향·예술 등을 결합해 브랜드가 추구하는 움직임과 감각을 하나의 공간에서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운동복 브랜드가 제품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문화공간과 예술을 통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전달한 것이다.
K팝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난다. 르세라핌은 지난 9월 싱글 2집 ‘Made My Night’ 발매를 기념해 민음사, 서울모닝커피클럽과 함께 리딩 파티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민음사가 준비한 책을 골라 읽고 서로에게 선물하며 음악과 커피를 함께 즐겼다. 음악을 듣는 데서 끝내지 않고 앨범이 가진 분위기와 메시지를 책과 공간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만든 것이다.
현대카드는 아예 신용카드 자체를 예술과 연결했다. 이탈리아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협업해 신분증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스페셜 플레이트를 선보였는데, 회원 사진이나 AI 캐릭터를 넣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카드의 기능을 설명하는 대신 디자인과 작가의 이름 자체가 관심을 끄는 방식이다.
이처럼 최근의 협업은 단순히 서로의 이름을 빌려 홍보 효과를 높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브랜드가 가진 제품에 다른 분야의 공간과 예술, 콘텐츠를 더해 소비자가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브랜드를 만나는 장면을 만드는 것이다.
● 소비자가 하던 것이 신제품이 된다
다른 분야와의 협업만큼 눈에 띄는 변화는 소비자의 행동을 브랜드가 직접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점이다. 기업이 새로운 유행을 일방적으로 만들어내는 대신, 사람들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먼저 즐기고 공유하는 방식에 주목한 뒤 이를 제품이나 콘텐츠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GS25가 선보인 ‘치즈 미역국’이 대표적이다. SNS에서 미역국에 체다치즈를 넣어 먹는 조합이 화제가 되자 이를 편의점 간편식으로 출시했다. 소비자들이 직접 만들어 먹던 레시피가 온라인 유행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상품으로 이어진 사례다.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도록 만드는 방식도 있다. 이디야커피는 신메뉴 ‘컵빙수 타이쿤’을 게임으로 만들어 소비자가 가상의 매장에서 직접 빙수를 제조하고 랭킹을 경쟁하도록 했다. 신제품을 설명하는 대신 직접 놀아보게 하면서 제품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제 소비자는 단순히 완성된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소비하고, 어떤 방식으로 즐기는지 자체가 브랜드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되고 있다. 앞서 브랜드가 다른 산업의 콘텐츠를 가져왔다면, 이제는 소비자들의 일상과 취향까지 마케팅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 요즘 브랜드는 ‘물건 밖’을 고민한다
앞선 사례들을 보면 제품을 알리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동복 브랜드가 박물관에서 행사를 열고, 아이돌이 출판사와 책을 읽고, 편의점은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만들어낸 레시피를 상품으로 내놓는다.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는 이유도, 소비자가 제품을 접하는 순간을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제품의 기능과 장점을 보여주는 것이 마케팅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브랜드를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사진을 찍고 공유할 공간을 마련하고, 다른 분야의 콘텐츠와 결합하면서 소비자가 브랜드를 기억할 장면을 만드는 식이다. 제품을 한 번 구매하게 하는 것보다 그 브랜드와 관련된 경험을 오래 남기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주목받는 이유도 있다. 비슷한 상품과 서비스가 넘쳐나는 시장에서는 기능이나 가격만으로 차이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면 제품 자체뿐 아니라 그 브랜드를 접한 과정까지 기억에 남을 수 있다. 마케팅의 무대가 매장과 광고에서 벗어나 문화공간, SNS, 게임, 전시 등으로 넓어지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 화제성보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와의 연결이다
물론 새롭고 재미있는 마케팅이 늘어난다고 해서 모든 방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화제성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다 보면 브랜드와 협업 대상의 관계가 어색해지거나, 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살피지 못한 채 콘텐츠가 공개될 위험도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스타벅스코리아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인 18일 ‘탱크 데이’, ‘책상에 탁’ 등의 표현을 활용한 텀블러 프로모션을 진행했다가 논란이 일자 행사를 중단하고 사과했다. 이후 대표이사가 해임됐고, 회사는 내부 프로세스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히 눈길을 끄는 표현을 만드는 것만큼 그 표현이 어떤 시점과 맥락에서 받아들여질지를 사전에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앞서 살펴본 사례들도 마찬가지다. 박물관과 운동복, 아이돌과 책, 소비자 레시피와 편의점처럼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협업과 참여를 통해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면서도, 그 경험이 왜 이 브랜드와 연결되는지까지 설명되고 공감될 때 마케팅의 힘이 생긴다. 2026년의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특이한 방식을 택했는지가 아니라, 화제성을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기억으로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어가느냐에 있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부산대 권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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