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4개월간 비축유 1억 배럴 방출…경유 우선 공급
걸프·러시아의 8월 경유 순수출, 2월보다 하루 160만 배럴 감소
가격 안정의 관건은 실제 경유 공급량과 정제제품 수출·재고 회복
주요 7개국(G7)이 비축유 1억 배럴을 풀기로 했다. 미국 경유 가격이 명목 기준 사상 최고치로 오르고, 미국이 유럽에 경유 수출 금지 가능성까지 거론한 끝에 나온 합의다. 다만 단순 계산으로는 방출량을 모두 경유로 채워도 하루 평균 공급량이 걸프 지역과 러시아의 8월 수출 감소분의 절반 수준이다. 가격 안정의 관건은 실제 공급량과 두 지역의 정제제품 수출 회복이다.
G7은 10월 2일 정상 성명에서 국제에너지기구(IEA)를 통해 4개월 동안 비축유 1억 배럴을 방출한다고 밝혔다. 방출은 즉시 시작하고, 첫 20일 안에 상당량의 경유를 우선 공급한다. 필요하면 수일 안에 IEA 차원에서 추가 경유 방출도 논의하기로 했다. 회원국 간 에너지 수출 제한을 자제한다는 약속도 재확인했다.
합의의 배경에는 경유 가격 급등과 미국·유럽의 갈등이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집계한 전국 경유 소매가격은 9월 21일 주간 갤런당 6.529달러로 1994년 집계 시작 이후 가장 높았다. 종전 최고치는 2022년 6월의 5.81달러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이 비상 비축분을 풀지 않으면 미국산 경유 수출을 금지할 수 있다고 압박했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10월 2일 이를 전면 거부한다고 밝혔다. 합의 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경유 수출 금지를 시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성명에는 경유의 정확한 물량과 국가별 분담 내용이 담기지 않았으며, 새로 추가되는 공급인지 분명하지 않다. IEA 회원국들은 지난 3월 4억 배럴 규모의 비축유 방출에 합의했는데, 이번 성명은 그 약속 가운데 이미 이행한 물량을 감안해 1억 배럴을 방출한다고 적었다. 1억 배럴의 일부 또는 전부가 3월에 약속한 물량의 잔여분일 수 있다.
● 사라진 경유 수출, 하루 160만 배럴
경유 시장의 압박은 주요 수출 지역의 공급 차질에서 시작됐다. IEA의 9월 석유시장보고서에 따르면 걸프 지역과 러시아의 8월 경유·가스오일 순수출은 전쟁 직전인 2월보다 하루 160만 배럴 줄었다. 두 지역은 2월 기준 세계 해상 경유·가스오일 교역의 약 45%를 차지했다.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통행 제한에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과 제품 수출 차질이 겹친 결과다.
이번 방출 규모는 1억 배럴, 4개월에 걸쳐 풀면 하루 평균 약 80만 배럴이다. 전량을 경유로 채운다고 가정해도 두 지역에서 줄어든 수출의 절반 수준이고, 실제 방출분에는 경유가 아닌 물량도 포함된다. 이는 8월 수출 감소분과 향후 방출량을 단순 비교한 계산이어서, 실제 효과는 경유 방출 비중과 공급 시기, 다른 지역의 공급과 수요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8월의 감소 폭이 이어진다면, 이번에 발표된 1억 배럴만으로는 4개월 평균으로 줄어든 수출을 모두 대신하지 못한다.
원유와 정제제품의 회복 속도도 달랐다. IEA에 따르면 8월 걸프 지역의 원유 수출은 전쟁 전보다 45% 가까이 적었고, 정제제품과 액화석유가스(LPG) 수출은 2월보다 약 60% 줄어 감소 폭이 더 컸다. 걸프 지역의 경유·가스오일 순수출은 하루 39만 배럴로, 전쟁 전의 4분의 1을 조금 넘었다.
9월에는 원유 수출이 더 회복됐다. 원자재 데이터 업체 Kpler는 이란을 제외한 걸프 지역에서 9월 1~28일 하루 최소 1650만 배럴의 원유·콘덴세이트가 반출돼 전쟁 전 평균 수준에 도달했다고 집계했다. 수출 경로는 달라졌다. 호르무즈해협을 거치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의 송유관으로 나간 물량의 비중이 전쟁 전 17%에서 40%로 커졌다. 이란을 포함하면 9월 물량은 전쟁 전의 91%다. 그러나 원유 수출의 회복이 경유 등 정제제품 수출의 정상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 미국 정유시설 가동률 97%, 추가 여력은 작아
걸프 지역과 러시아의 빈자리는 다른 지역의 공급이 일부 메워 왔다. IEA 8월 보고서에 따르면 7월 세계 해상 석유제품 교역이 전년보다 하루 380만 배럴 줄어드는 동안 미국의 석유제품 수출은 70만 배럴 늘었다. 미국에서 경유 수출 금지론이 나온 것도 미국산 석유제품에 해외 수요가 몰린 상황에서다.
G7은 이번 성명에서 정유시설 정비 일정을 조율해 동시 가동 중단을 피하고, 가능한 곳에서는 가동률을 일시적으로 높이기로 했다. 그러나 추가 증산 여력은 제한적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8월 미국 정유시설 가동률은 97%를 넘었고, EU 집행위원회도 9월 29일 유럽 정유시설이 거의 최대 수준으로 가동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성명은 정제 능력이 큰 다른 나라들과 협력해 경유 등 정제제품의 세계 생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담았다.
공급 부족은 원유와 경유의 가격 차이에 드러났다. OPEC이 집계한 8월 로테르담 가스오일 가격과 브렌트유 가격의 차이, 이른바 ‘크랙 스프레드’는 배럴당 평균 81.74달러였다. 전월보다 9.29달러, 1년 전보다 59.75달러 높았다. 경유 급등을 원유 가격 상승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 낮은 재고, 다가오는 겨울 수요
재고 여유도 크지 않다. EIA에 따르면 9월 25일 마감 주간 미국의 증류유(경유와 난방유 등 포함) 재고는 1억520만 배럴로, 전년 같은 주보다 14.9% 적었다.
유럽은 공급이 유지되고 있지만 재고가 넉넉한 상황은 아니다. EU 집행위원회는 10월 2일 경유 공급이 현재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앞선 9월 29일 평가에서는 공급은 안정적이지만 경유 가격이 높고, 암스테르담·로테르담·앤트워프(ARA)의 상업 재고는 최근 몇 주간 안정적이었지만 최근 5년 평균보다 낮다고 밝혔다.
가을과 겨울에는 또 다른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EIA의 9월 단기에너지전망은 가을 정유시설 정비로 증류유 생산이 줄고, 수확기 농업 수요와 겨울 난방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향후 경유 가격차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호르무즈 해협 통행과 중동 정유시설의 수출 회복을 전제로 했다. 정상화가 늦어지면 가격 압박은 전망보다 커질 수 있다.
● 한국은 정유사 공급가격에 상한
한국도 국제 경유 가격의 영향을 받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국제 경유 가격은 8월 넷째 주 배럴당 154달러에서 9월 16일 201달러로 올랐다. 이후 가격은 내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기준 싱가포르 현물 경유(황 함량 0.001%)는 10월 2일 172달러였다. G7 발표 이전에 시작된 하락이지만, 8월 넷째 주보다는 여전히 약 12% 높다.
정부는 9월 19일부터 4주간 적용하는 10차 석유 최고가격에서 경유를 리터당 1773원으로 동결했다. 이는 정유사가 주유소·대리점 등에 공급하는 가격의 상한이며, 주유소 소비자 판매가격은 아니다. 산업통상부는 9월 18일 브리핑에서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경유 가격이 당시보다 리터당 300원대 중반 이상 높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관건은 실제 공급량과 수출 회복
비축유는 당장의 부족분 일부를 메울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생산과 수출을 대신할 수는 없다. 앞으로 가격 안정을 판단하려면 경유가 실제로 얼마나, 언제 시장에 공급되는지, 걸프 지역과 러시아의 정제제품 선적이 회복되는지, 미국과 유럽의 재고가 늘기 시작하는지, 3가지를 중점적으로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동국대 이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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