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삼성전자 사상 최대 실적, 코스피는 -31%

동국대
이태민 동국대 · 프렌즈 1기
2026.08.07
몇 달 전 카페의 풍경과 지금
제미나이 AI 생성 이미지

연인에게 이별을 당했는데 그 이유를 모른다면 어떨 것 같은가. 몸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의사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한다면.

미치는 것이다.

사람은 나쁜 일 그 자체보다, 그 일이 왜 벌어졌는지 설명할 수 없을 때 더 무너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감의 상실이라 부른다. 지금 코스피 앞에 선 투자자들의 얼굴이 꼭 그렇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카페에 가면 온통 주식, 코스피 이야기였다. 20대 대학생부터 70대 할머니까지 증시를 입에 올렸다. 지금은 그 많던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오를 때는 이유를 몰라도 즐겁지만, 전문가조차 답을 못 내놓는 시장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코스피는 6월 18일 9063.84로 사상 최고를 찍은 뒤 7월 29일 장중 5262.77까지 밀렸다. 42%가 6주 만에 사라졌다. 지금은 6258.77, 고점 대비 31% 아래다.

체감만은 아니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6월 29일 장중 97.99까지 올라 2009년 지수 공표 이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6월 평균 85.42는 1년 전 같은 달(24.26)의 3.5배였고, 7월 평균도 84.73으로 거의 그대로였다.

8월 들어 70대 후반으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평시의 세 배가 넘는다. 지수도 마찬가지다. 8월 3일 -5.12%, 5일 +3.76%, 6일 -4.58%. 방향만 바뀔 뿐 폭은 그대로다. 시장이 안정을 찾았다기보다, 극단적 변동성이 일상이 된 것이다.

● 코스피 폭락 이유, 설명이 주가를 쫓아다닌다

하락의 이유가 주가가 빠질 때마다 바뀐다.

지난 7월 7일 삼성전자는 2분기 사상 최대 분기 이익을 발표했고, 사흘 뒤 SK하이닉스는 미국 ADR 상장에 성공했다. 반도체 투톱의 호재가 연달아 터졌다. 그런데 코스피는 6월 18일 9063에서 7월 13일 6806으로, 한 달도 안 돼 25% 밀렸다. 악재가 아니라 호재를 맞고 무너진 것이다.

시장은 이를 '셀온(sell on news)', 기대하던 재료가 실현되는 순간 오히려 매물이 쏟아지는 현상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말은 설명이라기보다 이름표에 가깝다. 왜 하필 그 순간이었는지, 왜 25%였는지는 여전히 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일경제가 당시 운용사·증권사 리서치 책임자 4인에게 물은 진단은 한 방향이었다. 정상우 KB자산운용 본부장은 "펀더멘털 훼손형 조정이 아니라 수급적 이슈"라고 했고, 남용수 한국투자신탁운용 본부장은 "추세적 하락 전환보다 단기 과열 해소 과정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메모리 서사의 힘이 약해진 것은 맞지만 하락장 전환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했다. "잠깐 쉬어가는 국면, 펀더멘털은 멀쩡"이라는 낙관이 컨센서스였다.

호재 소멸 차익 실현 관련 매경 기사
호재 소멸·차익 실현 동시다발 폭탄 …"당분간은 살얼음판" <매일경제>

2주 뒤, 설명은 완전히 달라졌다. 매일경제가 8월 초에 정리한 이유는 중국 창신메모리의 성공적 상장, 중국의 노광장비 국산화, 엔비디아발 'AI 순환 금융' 거품 우려였다.

모두 몇 달째 있던 재료다. 위 그래픽 세 번째 줄, '반도체 추가 리스크 요인' 칸에 중국의 생산능력 확대와 빅테크 AI 투자 둔화가 나란히 적혀 있다. 달라진 것은 재료가 아니라 재료의 자리다. 7월엔 각주였던 것이 8월엔 주범이 됐다. 주가가 더 깊이 빠지고 나서야 소환됐다. 원인이 하락을 예고한 게 아니라, 하락이 원인을 고른 것이다.

해석은 엇갈리기도 한다. 거래소는 7월 13일 발동의 원인을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라고 적었다. 같은 날 전문가들이 지목한 것은 반도체 수급이었다. 공식 기록과 시장 해석이 같은 폭락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인 것이다.

● 서킷브레이커 9번, 공포가 된 안전장치

한국 증시에는 두 개의 브레이크가 있다. 선물이 급등락하면 프로그램 매매를 5분간 멈추는 사이드카, 지수가 8% 넘게 빠지면 거래를 20분간 통째로 중단시키는 서킷브레이커다. 투자자들이 투매에 휩쓸리지 않도록 냉각 시간을 벌어주자는 취지다.

그런데 이 브레이크가 일상이 됐다. 서킷브레이커는 1998년 도입 이후 26년간 여섯 번 울렸다. 올해 들어서만 아홉 번, 그중 일곱 번은 최근 두 달에 몰렸다.

서킷브레이커 발동연혁표
<자료=KRX 한국거래소>

위 표에서 보듯, 시작은 26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2000년 첫 발동도 '미 증시하락'이었다. 다만 그 여섯 번 중 셋은 9·11 테러와 코로나19 팬데믹처럼 반박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반면 올해 목록을 채운 것은 '미 빅테크주 약세', '반도체 관련주 급락 등' — 미국이거나 중동이거나, 어느 쪽이든 남의 시장 한 줄이다. 한국 증시가 하루 10% 무너진 이유가 그렇게 적힌다.

사이드카는 더하다. 올해에만 45차례 발동됐다. 2002년 이후 24년간 누적된 105차례 가운데 42%가 올해 한 해에 몰린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친 2008년이 26차례였으니, 그해의 1.7배다.

사이드카 연도별 발동 내역표
<자료=KRX 한국거래소>

방향도 가리지 않았다. 45차례 가운데 22차례는 급락이 아니라 급등을 멈춰 세운 '매수 사이드카'였다. 코스피는 7월 28일 하루에 10.84% 빠졌고, 사흘 뒤인 31일에는 하루에 17.91% 올랐다. 안전장치가 방향과 무관하게 반응했다는 것은, 투자자 역시 신호의 내용이 아니라 신호가 켜졌다는 사실 자체에 반응하게 됐다는 뜻이다.

지난달 말 매일경제 보도에서 이종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복되는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 발동 자체가 투자자들에게 '학습된 공포'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안전장치가 켜지는 것이 곧 '더 떨어진다'는 신호로 읽히는 악순환이다. 브레이크를 밟을수록 승객이 더 겁먹는 차가 된 것이다.

● 브레이크는 시장이 밟는다. 안전벨트는 스스로.

투자자는 지금 두 겹의 통제 상실 위에 서 있다. 하나는 왜 떨어지는지 아무도 확실히 모른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 하락을 멈추려는 장치조차 공포의 방아쇠가 됐다는 것이다.

브레이크를 밟을수록 겁이 나는 차 안에서, 승객이 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선택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안전벨트를 어느 정도 조여둘지 정하는 것이다.

다음 브레이크가 언제 어느 방향으로 울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투자자에게 남는 통제 가능한 변수는 하나뿐이다. 시장이 움직이는 이유가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다. 하락의 이유는 시장이 정한다. 그 하락에 얼마를 걸어둘지는, 여전히 투자자의 몫이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동국대 이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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