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보안법에서 치안유지법까지"... 죄명으로 되짚은 독립운동 40년

고려대
박예나 고려대 · 프렌즈 1기
2026.08.14
1919년 독립운동가 처벌 죄명 분석
국가기록원 '독립운동 관련 형사사건부 DB' 분석. 1919년 가장 많이 적용된 죄명은 '보안법'과 '소요'였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았다. 광복에 이르기까지 을사늑약 이후 40여 년간 많은 독립운동가가 재판정에 섰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2024년 7월 등록한 '독립운동 관련 형사사건부 콘텐츠 DB' 2만 2천여 건을 활용해, 독립운동가들이 주로 어떤 죄명으로 잡혀갔으며 형량은 얼마나 되는지 시기별로 살펴봤다.

[1919년: 3·1운동과 '보안법']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다. 전 민족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전체 데이터 중 6,298건(28%)이 1919년 한 해에 몰려 있다. '보안법'(5,266회)과 '소요'(2,221회)로 가장 많이 처벌받았고, '출판법'(409회)이 뒤를 잇는다.

'보안법'은 1907년 일제가 집회와 결사를 금지할 목적으로 대한제국 정부에 강제로 제정·반포하게 한 법령이다. 결사·집회, 다수의 운동, 군집(群集)의 제한·금지 및 해산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소요'는 다중이 집합해 폭행·협박·손괴 행위를 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보안법'과 '소요', 두 죄목은 독립운동가들의 집회를 억누르는 데 이용됐다.

통감부는 반일 여론을 막기 위해 1909년 '출판법'도 제정했다. '출판법'은 애국심이나 반일 사상을 고취할 만한 내용이 담긴 교과서나 저작물을 규제한 법이었다.

1925~1937년 독립운동가 처벌 죄명 분석
국가기록원 '독립운동 관련 형사사건부 DB' 분석. 1925~1937년 가장 많이 적용된 죄명은 '치안유지법'과 '보안법'이었다.

[1925~1937년: '치안유지법'의 확산]

3·1운동 이후에도 일제에 맞선 저항은 계속되었다. 다만 그 방향은 바뀌었다. 실력양성운동과 민족 문화 수호 운동을 통한 항일운동이 이어졌다. 일본은 이 새로운 흐름에 맞서 자국 내 사회주의 운동을 막고자 만든 '치안유지법'을 우리나라에도 적용했다.

'치안유지법'은 1925년 일본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의 확산을 막고 천황제 통치를 부정하는 사상을 통제하고자 제정한 법률이다. 일제는 이 법으로 한민족의 사상을 통제했다. 사회주의·무정부주의·독립운동 등 어떤 운동을 벌이든, 이들을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다.

여전히 '소요'(1,265회), '보안법'(1,145회), '출판법'(940회)으로 처벌된 사람도 상당했다.

1938~1944년 독립운동가 처벌 죄명 분석
국가기록원 '독립운동 관련 형사사건부 DB' 분석. 1938~1944년 '조선임시보안령', '육군형법', '해군형법' 등이 새롭게 등장해 적용됐다.

[1938~1944년: 민간인까지 겨눈 군사법령]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으로 조선은 총력전의 후방 기지로 전락했다. 이듬해인 1938년부터 통제는 더 가혹해졌고, 민간인에게도 '육군형법'(334회)·'해군형법'(153회) 같은 군사법령이 적용됐다.

이 시기에는 '치안유지법'(811회)에 이어 '조선임시보안령'(537회)으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처벌됐다. 1941년 제정된 '조선임시보안령'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단속하고, 시국에 관한 유언비어를 유포한 자를 처벌하기 위한 법령이다.

독립운동가 평균 복역기간 변화
국가기록원 '독립운동 관련 형사사건부 DB' 분석. 1919년 1.06년이었던 독립운동가의 평균 복역기간이 전시체제기인 1938~1944년에는 2.74년으로 증가했다.

[시간이 지나며 복역기간도 늘었다]

형량을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 9,580건에 한해 분석한 결과, 독립운동가의 평균 복역기간은 약 1년 11개월(1.88년), 중앙값은 1년이었다. 시간이 지나 광복이 가까워질수록 처벌 수위는 높아졌다. 시기별로 ▲1.06년(1919년) ▲2.2년(1925~1937년) ▲2.74년(1938~1944년)으로 갈수록 복역기간이 길어졌다.

보안법에서 치안유지법, 그리고 군사법령까지. 독립운동가들에게 적용된 법이 계속 바뀐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제가 통제의 방식을 바꾼 배경에는, 우리 민족의 치열한 항일 운동이 있었다. 2만 2천여 건의 방대한 처벌 데이터가 이를 방증한다. 재판 기록에 남겨진 죄명(罪名)의 변화는 독립운동가들이 온몸으로 부딪쳐 써 내려간 역사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고려대 박예나]

#독립운동 #광복절 #국가기록원 #데이터저널리즘 #매경플러스프렌즈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