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807만명, 가입금액 54조7000억원. 올해 1월 말 기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규모다. 2016년 도입된 지 약 10년 만에 가입자 80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가입자가 직접 금융상품을 운용하는 투자중개형 ISA에는 전체 가입금액의 46.8%가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돼 있다. ISA가 예·적금을 담아두는 절세계좌를 넘어 개인투자자의 주요 자산관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이처럼 이용자가 크게 늘어난 ISA가 최근 세제개편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지난 8월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에 기존 ISA 제도를 손질하는 내용과 함께 국내 투자를 우대하는 '생산적금융 ISA' 신설 방안을 담으면서다. 청년에게 추가 혜택까지 주는 제도였지만 발표 직후 투자자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정부는 일부 내용을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국내 투자하면 전액 비과세…새로 등장한 '생산적금융 ISA']
정부가 생산적금융 ISA를 내놓은 배경에는 가계 자금을 국내 자본시장으로 유도하겠다는 정책 목표가 있다. 개편안에 따르면 생산적금융 ISA에서는 국내 상장주식과 국내 주식형 펀드, 국민성장펀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에 투자할 수 있다. 국내 증시에 상장돼 있더라도 해외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ETF는 투자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신 계좌에서 발생하는 이자·배당소득을 한도 없이 비과세한다. 연간 납입한도는 2000만원, 총 납입한도는 2억원으로 기존 일반 ISA의 총 한도 1억원보다 크다.
청년에게는 혜택을 하나 더 얹었다. 일정 소득요건을 충족하는 청년형 생산적금융 ISA 가입자는 납입액의 10%를 소득공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자본시장으로 장기 자금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청년의 자산 형성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생산적금융 ISA 자체만 놓고 보면 기존 ISA보다 세제혜택이 큰 부분도 있다. 국내 상장주식의 장내 매매차익은 일반 투자자에게도 원칙적으로 비과세지만 배당을 비롯한 금융소득에는 세금이 붙는다. 이자·배당소득을 전액 비과세하는 혜택은 배당주나 관련 펀드에 장기간 투자하는 가입자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새 혜택'이 아니라 기존 ISA 변경 방안]
그럼에도 반발이 커진 이유는 새로운 ISA가 추가됐기 때문만이 아니다. 8월 3일 개편안에는 기존 일반 ISA의 미사용 납입한도 이월을 폐지하고 계약기간을 최대 5년으로 제한하는 내용도 함께 들어갔다.
현행 ISA에서는 연간 납입한도 2000만원을 모두 사용하지 않더라도 남은 한도를 이후 연도로 넘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올해 500만원만 납입했다면 사용하지 않은 1500만원의 한도를 다음 해 이후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또 의무가입기간 3년이 지나면 계좌를 연장해 장기간 유지할 수 있다.
이 두 기능은 매년 일정한 금액을 투자하기 어려운 청년이나 사회초년생에게 오히려 활용도가 높다. 취업 초기에는 납입 여력이 작다가 소득이 늘어난 뒤 과거에 사용하지 못한 한도까지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년 2000만원을 꾸준히 채울 수 있는 투자자보다 소득과 저축 여력이 아직 불규칙한 가입자에게 '이월'이라는 유연성이 더 중요할 수 있는 셈이다.
장기 운용에서도 마찬가지다. ISA의 절세효과는 짧은 기간의 수익률보다 계좌 안에서 여러 자산을 오랫동안 운용할 때 커질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계약기간을 5년으로 제한하면 장기 자산형성을 지원한다는 ISA의 기존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정부의 개편안 발표 이후 정치권에서도 "기존 ISA 혜택은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10% 소득공제'도 청년마다 체감 효과는 다르다]
청년형 생산적금융 ISA의 '납입액 10% 소득공제' 역시 숫자만으로 혜택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소득공제는 납입액의 10%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제도가 아니다. 세금을 계산할 때 과세 대상이 되는 소득을 줄여주는 방식이다. 같은 금액을 ISA에 납입해도 개인의 소득과 적용되는 세율에 따라 실제 절세액은 달라질 수 있다. 근로소득이 없거나 납부할 소득세가 크지 않은 대학생과 저소득 청년이라면 당장의 체감 혜택 역시 제한적일 수 있다.
반면 납입한도 이월은 현재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향후 자금 여력이 생겼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이다. 이번 논란이 '청년에게 혜택을 얼마나 많이 주느냐'보다 어떤 방식의 지원이 자산 형성 초기 단계에 더 적합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결국 되돌리는 ISA…남은 질문은 '두 정책 목표의 공존']
투자자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ISA 개편안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8월 20일 세법 개정안 입법예고가 종료되는 가운데 정부는 기존 ISA와 생산적금융 ISA 모두 미사용 납입한도 이월을 허용하고, 계약기간도 사실상 계속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확정안은 아니며 정부는 의견수렴을 거쳐 9월 국회에 세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번 논란은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와 개인의 자산 형성이라는 두 정책 목표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국내 기업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국내 투자에 더 큰 세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은 가능하다. 다만 새로운 선택지에 혜택을 추가하는 것과 기존 투자자의 선택권이나 장기 운용 기능을 줄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특히 800만명 이상이 사용하는 제도로 성장한 ISA라면 정책 변경이 개인의 투자계획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커졌다.
향후 확정안에서는 세제혜택의 크기만 볼 것이 아니라 기존 ISA의 한도 이월과 장기 운용 기능이 얼마나 유지되는지, 생산적금융 ISA의 투자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자본시장으로 자금을 유도하면서도 개인이 자신의 소득과 위험 선호에 맞게 자산을 배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번 ISA 개편이 풀어야 할 과제도 여기에 있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서강대 이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