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600만 관객이 놓친 것…영화 <오디세이> 너머의 『오디세이아』 다시 읽기

연세대
전영은 연세대 · 프렌즈 1기
2026.09.03
영화 '오디세이' 스틸컷
<영화 '오디세이' 스틸컷>

최근 극장가를 강타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의 흥행 열기가 심상치 않다. 개봉 17일 만에 누적 관객 수 6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 작품은 화려한 시각적 스펙터클과 압도적인 스케일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트로이 전쟁, 키클롭스, 세이렌의 유혹 등 영화 속에 펼쳐지는 신화적 모티프들은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이 거대한 서사를 스크린으로 접한 많은 관객들이 다시 원작 도서를 찾으며 서점가에도 '고전 열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이 3,000년 전의 이야기를 단순히 '괴물과 싸우는 영웅의 모험담'으로만 소비한다면, 호메로스가 남긴 거대한 바다의 표면만 훑는 격이다. 화려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이면에 숨겨진 원작 『오디세이아』의 깊은 철학적 함의와 그 진짜 매력을 짚어보도록 하자.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의 오디세우스와 세이렌들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의 오디세우스와 세이렌들, 1909>

[모험이 아닌 귀환의 서사: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10년]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함락 후 고향 이타카로 향하는 오디세우스의 10년 여정을 다룬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와의 사투, 마녀 키르케의 저주, 죽은 자들의 세계 방문, 세이렌의 치명적인 유혹 등 서사시의 굵직한 에피소드들은 겉보기엔 환상적인 모험극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이 끔찍한 시련들을 견뎌내는 동력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욕이나 보물이 아니다. 오직 '이타카로 돌아가겠다'는 맹렬한 의지다.

그에게 이타카는 단순한 지리적 고향을 넘어선다.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 그리고 이타카의 왕이라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이름이 실재하는 '존재의 근원'이다. 10년간 타인의 고향(트로이)을 파괴했던 영웅이, 또 다른 10년간 자신의 고향을 되찾기 위해 바다를 떠도는 이 역설적인 구조는 결국 잃어버린 장소를 되찾는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정체성)를 회복해 나가는 실존적 투쟁을 의미한다.

[완벽함을 벗어던진 인간: 메티스(지혜)와 오만의 양면성]

전작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가 압도적인 육체적 힘과 명예(Kleos)를 상징한다면, 오디세우스는 꾀와 지혜, 즉 '메티스(Metis)'의 상징이다. 그는 압도적인 무력 대신 지략으로 위기를 돌파한다. 키클롭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닌 자(Outis)'라고 속여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은 그의 지적 탁월함을 보여주는 백미다.

그러나 『오디세이아』는 그를 무결점의 초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키클롭스의 동굴을 빠져나온 후,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려는 치기 어린 욕망과 복수심에 사로잡혀 진짜 이름을 외치고 만다. 이 오만함은 결국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며 귀환을 10년이나 늦추는 참담한 결과를 낳는다. 영리함과 충동성, 지혜와 결함을 동시에 지닌 이 입체적인 모습이야말로 오디세우스를 고대의 신화적 영웅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인간적인 영웅'으로 끌어내리는 중요한 장치다.

영화 '오디세이' 스틸컷
<영화 '오디세이' 스틸컷>

[페넬로페의 지략]

『오디세이아』를 깊이 읽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축은 아내 페넬로페다. 흔히 그녀를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동적인 정절의 아이콘으로 오해하지만, 텍스트 속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 못지않은 지략가다.

폭력으로 궁전을 점거한 108명의 구혼자들 앞에서 그녀는 무력이 아닌 책략으로 맞선다. 낮에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고 밤에는 몰래 풀어버리며 시간을 버는 행위는 폭력적인 가부장제적 압박 속에서 자신의 선택권과 영지를 지켜내는 그녀만의 '메티스'다. 오디세우스가 외부의 괴물들과 싸울 때, 페넬로페는 내부의 적들을 상대로 치열한 정치적 투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결합은 단순한 가족의 상봉이 아닌, 동등한 지혜를 가진 두 주체의 완벽한 연대다.

[신이 결정하는 운명 vs 인간의 선택]

작품 속 인간들은 신들의 총애와 분노 사이에서 표류한다. 아테나는 돕고 포세이돈은 방해하는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극의 서사를 굴리는 핵심 동력은 결국 '인간의 선택'이다. 인간은 운명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파도 위에서 돛을 어떻게 접고 펼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한다. 이들은 때로는 어리석은 선택으로 고통을 가중시키지만, 그 고통을 수용하고 다시 노를 젓는 주체성을 보여준다. 고전 속 세계관이 운명론에 갇혀있지 않고 '자유의지'라는 근대적 가치를 향해 열려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쉬바인의 오디세우스와 아내 페넬로페의 상봉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쉬바인의 '오디세우스와 아내 페넬로페의 상봉'>

[귀환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10년의 전쟁과 10년의 방랑 끝에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귀환한다. 하지만 그의 귀환은 '과거로의 회귀'를 뜻하지 않는다. 아들은 어른이 되었고, 아내는 거친 세월을 견뎌냈으며, 오디세우스 자신 역시 전쟁과 방랑의 트라우마를 겪으며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변모했다. 따라서 귀환이란 예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 자신이 변화한 세계와 새롭게 관계 맺는' 재탄생의 과정이다.

기원전 8세기에 성립된 이 서사시가 3,000년이 지난 지금, 영화 〈오디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시금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술이 진보하고 사회가 급변해도 우리는 여전히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길을 잃고, 유혹에 흔들리며, 고난을 견디고, 결국 돌아가야 할 '나만의 이타카'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의 압도적인 파도가 남긴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다면, 이제 서가에 꽂힌 낡은 『오디세이아』를 펼쳐 활자의 바다로 항해를 떠나보길 권한다.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질문에 대한 해답이 그곳에 숨어있을지 모른다.

[매경플러스 프렌즈 1기=연세대 전영은]

#오디세이 #오디세이아 #고전문학 #크리스토퍼놀란 #매경플러스프렌즈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