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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약국도 ‘K’를 입었다… 올리브영 다음 쇼핑 코스가 된 K-Pharmacy

서울시립대
이한별 서울시립대 · 18기 서포터즈
2026.10.03

약국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필자에게 약국은 아플 때 처방전을 들고 찾아가거나 필요한 약을 빠르게 사서 나오는, 어딘가 조용하고 전문적인 공간에 가까웠다. 화장품 매장처럼 제품을 천천히 구경하거나 일부러 찾아가 시간을 보내는 곳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약국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성수와 명동, 홍대 등 관광객과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지역에서는 화장품처럼 제품을 진열하고, 피부 고민에 맞는 제품을 추천받으며 쇼핑하는 약국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레디영(Ready Young)’이다.

레디영의 K-Pharmacy 브랜드 소개
레디영의 K-Pharmacy 브랜드 소개

레디영은 스스로를 “건강과 뷰티, 전문성과 트렌드가 만나는 새로운 약국”으로 소개한다. 현재 서울을 비롯해 부산과 제주까지 파트너 약국을 운영하며 ‘K-Pharmacy’를 하나의 브랜드로 전개하고 있다.

아플 때 찾던 약국은 어떻게 K-뷰티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 걸까?

● “여기가 약국이라고?”… 전문성에 트렌드를 입히다

레디영의 흥미로운 점은 약국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기존 약국과는 다른 인상을 만든다는 데 있다.

성수레디영약국 외관 <직접 촬영>
성수레디영약국 외관 <직접 촬영>

전통적인 약국에서는 필요한 의약품을 약사에게 요청하고 구매하는 과정이 중심이었다면, K-Pharmacy를 표방하는 공간에서는 의약품과 함께 더마 화장품, 건강 관련 상품 등을 둘러보고 자신의 고민에 맞는 제품을 탐색하는 경험이 강조된다.

이 변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약국이 원래 가지고 있던 ‘전문성’이 오히려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장품 매장에서는 소비자가 직접 수많은 제품을 비교하고 선택한다면, 약국에서는 ‘약사가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 자체가 제품에 조금 다른 신뢰감을 준다. 피부 트러블이나 흉터, 두피처럼 보다 구체적인 고민을 가진 소비자에게는 단순히 유행하는 제품보다 “내 고민에 맞는 제품인가”를 확인하고 싶은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무신사 뷰티가 온누리약국과 손잡고 선보인 ‘파머시 뷰티’도 같은 흐름이다. 지난 9월 문을 연 무신사 뷰티 홍대점에는 약사가 상주하며 피부 고민에 맞춰 화장품부터 관련 의약품까지 상담받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무신사 역시 이를 단순한 약국 입점이 아니라 약국의 전문성을 뷰티 쇼핑에 결합한 새로운 리테일 형태로 설명하고 있다.

필자에게도 약국은 다소 ‘보수적이고 전문적인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그 전문성을 없애는 대신 더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포장했을 때 오히려 새로운 매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 “올리브영 다음은 약국”… 외국인이 K-Pharmacy를 찾는 이유

이러한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은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다.

외국인 국내 의료 소비에서 약국이 차지하는 비중 <자료=한국관광 데이터랩>
외국인 국내 의료 소비에서 약국이 차지하는 비중 <자료=한국관광 데이터랩>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를 인용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5월 외국인의 국내 의료 소비액은 약 2,500억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약국은 소비액의 12.9%, 결제 건수 기준으로는 무려 69.8%를 차지했다. 지난해 1월 약국의 소비액 비중이 4.9%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짧은 기간 동안 존재감이 크게 커진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외국인들이 단순히 감기약이나 진통제를 사기 위해 약국을 찾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장 취재에서는 피부 재생 크림이나 여드름 관련 제품 등 일반적인 화장품 매장에서 찾기 어려운 ‘약국템’을 미리 SNS나 유튜브에서 검색해 쇼핑 리스트를 만들어 오는 관광객 사례도 확인된다.

피부과 시술 이후 관련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약국을 찾는 경우도 나타나면서, 한국 여행에서 올리브영 → 피부과 → 약국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K-뷰티 소비 동선까지 등장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꽤 재미있는 변화다. 올리브영이 수많은 K-뷰티 브랜드를 처음 발견하고 비교하는 공간이라면, 약국은 그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피부 고민과 기능을 중심으로 제품을 찾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즉 약국이 올리브영을 대체한다기보다, K-뷰티를 소비하는 범위 자체가 넓어지고 있는 것에 가깝다.

K-뷰티에 관심을 가진 관광객이 화장품 매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부과를 경험하고, 다시 약국으로 이동한다. 기존에는 여행 중 몸이 아플 때나 찾았던 공간이 이제는 일부 관광객에게 하나의 쇼핑 목적지로까지 확장된 셈이다.

● “약국도 브랜드가 된다”… 다음 ‘K’는 어디에 붙을까

K-Pharmacy의 성장을 외국인 관광객만의 유행으로 보기도 어렵다.

무신사 뷰티의 첫 번째 오프라인 단독 플래그십 스토어인 '무신사 뷰티 홍대'
무신사 뷰티의 첫 번째 오프라인 단독 플래그십 스토어인 '무신사 뷰티 홍대'

지난 9월 문을 연 무신사 뷰티 홍대점의 초기 구매 고객을 보면 2030 여성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동시에 외국인 방문객도 몰렸다. 전문성을 갖춘 뷰티 쇼핑에 대한 관심이 국내 젊은 소비자와 외국인 관광객 모두에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느낀 부분은 단순히 ‘약국에서 화장품을 많이 판다’는 것이 아니다. 약국이라는 공간의 이미지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약국이 약을 구입하는 기능적인 공간이었다면, 최근 등장한 K-Pharmacy는 그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제품을 구경하고, 자신의 고민에 맞는 상품을 찾고, 하나의 K-뷰티 경험으로 기억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K’라는 이름이 가진 힘일지도 모른다. K-팝이나 K-드라마처럼 처음부터 문화 콘텐츠였던 영역뿐 아니라 K-뷰티, K-푸드에 이어 이제는 한국에서 너무 익숙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약국까지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약국 앞에 ‘K’가 붙을 것이라고는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래서 이번 변화가 더 흥미롭다. 우리가 평소 당연하게 이용해 온 공간도 외국인의 시선과 새로운 소비 방식이 만나면 하나의 관광 콘텐츠이자 브랜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약국이 이렇게 달라졌다면 다음은 무엇일까. 한국인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일상이 어떤 모습으로 ‘K’를 입게 될지, 그다음 변화가 기대된다.

[매일경제 서포터즈 18기=서울시립대 이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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