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뽑파민'… 4년 새 30배 늘어난 인형뽑기방
저녁 강남역 거리를 걷다 보면 유독 밝은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것은 식당이나 카페가 아닌 형형색색의 인형들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벽면을 따라 인형뽑기 기계가 늘어서 있고, 기계 안에는 인기 캐릭터 인형과 키링, 작은 피규어 등이 가득했다.
최근 대학가와 번화가를 중심으로 인형뽑기방과 가챠숍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동안 무인사진관과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채웠던 무인점포 자리에 이제는 인형뽑기 기계가 들어서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삼성카드 데이터랩이 지난 8월 발표한 '무인점포 시장 트렌드'에 따르면 전체 무인점포 가운데 오락실·뽑기숍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0.27%에서 2026년 6월 8%로 약 30배 증가했다.
또한 점포당 평균 매출 역시 2024년 6월과 비교해 1.8배 늘었다. 같은 기간 조사 대상 무인업종 가운데 상당수가 점포당 매출 감소를 기록한 것과 대비되는 흐름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다시 인형뽑기에 빠진 걸까.
● 0.27%에서 8%로… 무인점포의 '새 얼굴' 된 뽑기방
인형뽑기의 인기를 실감하기 위해 강남역의 한 매장을 직접 방문해봤다. 인형 뽑기 기계에는 일반 봉제 인형뿐 아니라 치이카와 등 최근 인기를 끄는 캐릭터 상품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일부 기계에는 키링이나 피규어처럼 가방에 달거나 수집하기 좋은 작은 굿즈도 들어 있었다.
한 판에 1,000원이었고, 현금만 쓰던 옛날과 달리 카드나 간편결제로도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가격만 보면 부담이 크지 않다. 문제는 한 번으로 끝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인형뽑기를 하는 현상과 관련해 '뽑기'와 '도파민'을 합친 '뽑파민'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될 것 같은 순간'을 산다
인형뽑기의 가장 큰 특징은 원하는 상품을 바로 돈 주고 사는 일반적인 소비와 다르다는 데 있다. 같은 인형이 인터넷에서 판매되고 있더라도 사람들은 굳이 집게를 움직여 직접 뽑는다.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는 짧은 과정 자체가 하나의 놀이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지켜보면 하나를 뽑지 못했다고 바로 매장을 나가는 사람보다 기계 안 인형의 위치를 다시 살펴본 뒤 재도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잡힐 것 같다'는 기대가 다시 1,000원을 쓰게 만드는 셈이다.
나도 직접 해봤다. 예산은 5,000원으로 정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집게가 인형을 잡는 듯했지만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떨어졌다. 두 번째 역시 실패했다.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처음에는 '5,000원만 써보자'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어느새 10,000원을 쓰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뽑지 못했다.
● “멈추기 어렵다” 10명 중 8명, 뽑기 중독성 느껴
인형뽑기의 재미를 만드는 ‘이번에는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은 반복적인 소비로 이어지기도 한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6년 전국 만 13~69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형뽑기 vs 가챠 관련 소비태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8%는 뽑기에 중독성이 있다고 답했다. 60.0%는 ‘뽑기도 중독의 일종’이라는 데 동의했고, ‘뽑기는 도박에 가깝다’는 응답도 46.7%에 달했다.
실제 지출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타났다. 응답자의 71.5%는 뽑기를 하다 보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돈을 쓰게 된다고 답했다.
● 왜 멈추지 못할까… 내가 느낀 뽑파민의 이유 세 가지
5,000원이 10,000원이 된 이유를 되짚어 보니 세 가지였다.
첫째,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 인형뽑기는 완전히 실패하는 일이 드물다. 집게가 인형을 잡는 듯하다가 올라가는 도중에 떨어지고, 인형이 출구 쪽으로 조금 밀려나 있다. 그러면 머릿속에 계산이 돈다. 지금 위치면 다음엔 되겠다. 못 뽑았다는 느낌보다 거의 뽑을 뻔했다는 느낌이 훨씬 세다. 그 아쉬움이 다음 1,000원을 넣게 만든다.
둘째, 이미 쓴 돈이 아깝다. 처음 정한 5,000원을 넘기는 순간부터는 인형이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쓴 돈이 아까워서 하게 된다. 이만큼 썼는데 빈손으로 나가면 손해 같고, 뭐라도 하나 뽑고 가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나간 돈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기가 쉽지 않다. 인형값보다 더 쓰는 순간이 어렵지 않게 온다.
셋째, 결국 뽑았을 때의 쾌감이다. 고생한 만큼 쾌감은 더 크게 느껴지고, 내 손으로 해냈다는 성취감도 있다. 그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 다음에 또 하러 가게 된다. 진 기억은 흐려지고 이긴 순간만 남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뽑파민'이라는 말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 '1,000원의 선택'이 바꾼 골목 풍경
골목마다 들어선 뽑기방은 요즘 소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 짧은 즐거움을 사고, 좋아하는 캐릭터를 모으고, 결과를 알 수 없는 경험에 다시 지갑을 여는 소비. 그 '한 번만 더'가 쌓여 골목의 풍경까지 바꾸고 있다.
[매일경제 서포터즈 18기=성균관대 전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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