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업 앤트로픽의 기업공개(IPO)를 둘러싸고 2조 달러 수준의 기업가치가 거론되고 있다. AI가 일과 소비의 방식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이 거대한 가격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전망만으로 투자 가격까지 정당화할 수 있을까. 인터넷이 일상을 바꾼 뒤에도 당시 주목받던 모든 기업과 투자자가 승자가 되지는 못했다. 앤트로픽의 IPO를 바라보며 물어야 할 것은 AI의 가능성과 함께, 그 가능성을 얼마에 사는 것이 합리적인가다.
● 빠르게 늘어나는 매출, 2조 달러를 정당화할까
로이터에 따르면 앤트로픽의 연환산 매출은 지난 7월 말 65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를 기준으로 2조 달러는 매출의 약 31배에 해당한다. 여기서 연환산 매출은 최근의 매출 속도를 1년으로 환산한 수치로, 이미 한 해 동안 벌어들인 확정 매출과는 다르다. 2조 달러 역시 IPO에서 조달할 금액이 아니라 회사 지분 전체에 매기는 가격이다.
긍정론자는 현재 매출만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할 수 있다. 실제로 로이터는 앤트로픽의 가치평가 논의가 2028년 매출 1,900억~2,000억 달러 전망에 기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전망이 실현된다면 2조 달러는 그해 매출의 약 10배가 된다. 미래의 성장을 고려하면 지금 보이는 가격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예상 매출을 분모에 넣어 배수가 낮아졌다고 해서 가격의 적정성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그 매출을 달성할 확률과 필요한 비용을 함께 따져야 한다. 반대로 매출이 영원히 늘지 않는다고 가정해 고평가를 단정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쟁점은 성장의 유무가 아니라, 지금의 가격을 정당화할 만큼 크고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지다.
● 닷컴버블도 세상을 바꿀 기술에서 시작됐다
닷컴버블의 교훈은 인터넷의 가능성이 거짓이었다는 데 있지 않다. 인터넷은 실제로 경제와 일상을 바꿨다. 그러나 산업의 성공이 특정 기업의 경쟁 우위나 고점에 투자한 주주의 수익까지 보장하지는 않았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스콧 맥닐리 당시 최고경영자(CEO)는 2002년 인터뷰에서 약 2년 전 자사 주식이 매출의 10배에 거래됐던 상황을 비판했다. 매출 전액을 10년간 배당해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예로, 비용과 세금을 빼고 주주에게 실제로 남는 돈을 따져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다만 이는 거품 붕괴 이후의 평가였으며, 미래 성장과 10년 뒤 남아 있을 지분가치까지 반영한 정밀한 계산은 아니었다. 매출 10배를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고평가 기준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야후의 경로는 더 복합적이다. 야후는 닷컴버블이 터지자 곧바로 사라진 기업이 아니었다. 위기 이후에도 사업을 이어가며 2003년 잉크토미와 오버추어를 인수했다. 그러나 2017년에는 자신의 핵심 인터넷 사업을 버라이즌에 매각했다. 위기를 견딜 자금과 인수 여력이 있어도 장기적인 선두 지위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기업의 생존, 사업의 성장, 투자자의 수익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이 역사를 앤트로픽의 실패를 예언하는 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다. 다만 ‘이번에는 다르다’는 기대가 충분한 검증을 대신해서도 안 된다. 과거와 다른 성장 속도와 사업 구조가 있다면, 그것이 장기적인 이익으로 이어지는 경로까지 설명해야 한다.
● 사용량은 늘고 가격은 내려간다, 이익은 남을까
AI 기업의 수익성을 판단할 때는 이용량과 판매가격을 함께 봐야 한다. Epoch AI는 2023년 이후 일정한 AI 성능을 얻기 위해 이용자가 지불하는 비용이 연간 약 13분의 1로 낮아졌다고 추정했다. 이는 특정 기업의 모든 서비스 가격이나 생산원가가 같은 비율로 하락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비슷한 성능을 더 싸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선두 기업이 높은 가격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가격 하락 자체가 이익 감소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타당하다. 가령 판매가격이 100원에서 50원으로 내려가도 직접 처리원가가 80원에서 20원으로 낮아지면 건당 남는 금액은 20원에서 30원으로 늘어난다. 이는 가상의 예시지만, 원가 절감이 가격 인하보다 빠르면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저렴해진 서비스가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전체 매출을 늘릴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그렇게 남긴 돈으로 연구개발비와 다른 운영비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다. 처리 효율이 좋아지더라도 더 강력한 모델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확대하는 데 필요한 지출이 더 빠르게 늘 수 있다. 이용량 증가만으로 사업의 성공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매출 성장과 함께 수익성이 개선되고, 필요한 투자를 마친 뒤에도 현금이 남는지 확인해야 한다.
● IPO의 성공, 누구의 성공인가
IPO가 흥행하면 회사는 신주 발행을 통해 사업을 이어갈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후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이미 조달한 현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자금을 확보한 기업은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경쟁이 약해진 틈에 인재나 기술을 인수할 여력을 얻을 수 있다. 상장은 실제 사업 경쟁력을 높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IPO의 성공은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회사에는 자금 확보가, 기존 투자자에게는 투자금 회수가 성공일 수 있다. 반면 새로 주식을 사는 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매입 가격 대비 앞으로 얻을 수익이다. IPO에 기존 주주가 보유 주식을 파는 구주매출이 포함되면 그 대금은 회사가 아니라 해당 주주에게 돌아간다는 점도 구분해야 한다.
앤트로픽이 높은 가격에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한다면 성장과 생존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가격에 들어온 투자자는 이미 큰 기대가 반영된 지분을 사는 것이다. 사업이 성장하더라도 기대에 못 미치거나 성장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든다면 투자 수익은 부진할 수 있다. IPO 흥행은 시장의 기대를 확인하는 사건이지, 그 가격에 투자해도 좋은 수익을 얻는다는 보증은 아니다.
●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은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
필자는 앤트로픽의 2조 달러를 현재 매출 배수만으로 거품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AI가 거대한 시장을 만든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격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와 주주에게 돌아갈 이익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AI가 더 뛰어난 AI를 개발하면서 지능과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를 확정된 미래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학습 데이터의 변화도 변수다. 글쓰기와 코딩에 AI가 널리 활용될수록 다음 모델의 학습자료에 기존 AI의 오류와 편향이 반복될 수 있다. 《네이처》 연구도 AI 생성 데이터를 무분별하게 반복 학습할 때 데이터의 다양성과 특성을 잃는 ‘모델 붕괴’ 위험을 지적했다. 다만 검증된 생성 결과와 실험을 통해 성능을 개선할 수도 있으므로, 이를 AI 발전의 한계가 확정됐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쟁점은 생성물의 양보다 그 결과를 검증하고 새로운 지식으로 연결하는 능력이다.
실제 업무에서도 높은 수행 능력이 곧 완전한 자동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AI가 작업 대부분을 처리해도 사람이 오류를 찾고 수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면 비용 절감 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 반대로 적은 검토만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완전한 자동화 없이도 경제적 가치는 크다. 성능뿐 아니라 고객이 실제로 절약하는 시간과 비용을 확인해야 한다.
AGI의 등장이 늦어져도 고객과 활용 범위가 확대되면 매출은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 가능성과 2조 달러를 정당화할 만큼의 성장은 다른 문제다. 폭발적인 지능 향상이 예상보다 늦어지더라도, 앤트로픽은 점진적인 개선과 고객 확대만으로 지금의 가격을 설명할 수 있는가. 낙관적인 기술적 도약이 실현돼야만 성립하는 가치평가라면 그 불확실성도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의 발전 가능성 자체가 아니라, 기대한 기술적 도약이 늦어져도 지금의 기업가치를 뒷받침할 수 있느냐다. 인터넷이 성공했듯 AI도 세상을 바꿀 수 있지만, 그 미래를 믿는 것과 어떤 가격에도 투자하는 것은 다르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은 혁신에 대한 기대를 투자자의 수익으로 전환하는 능력으로 입증돼야 한다.
[매일경제 서포터즈 18기=충남대 이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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