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앱에 접속해 계좌 잔액을 확인하고, 환율을 조회하고, 송금하는 일은 이제 몇 번의 터치만으로 가능하다. 최근에는 여기에 인공지능까지 더해지고 있다. AI가 금융상품을 추천하고 고객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거래 내역을 분석하고, 이용자의 요청에 따라 금융 업무를 수행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금융의 AI 전환이 빨라질수록 기대도 커진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새로운 걱정이 등장하고 있다. 금융을 편리하게 만드는 AI가 금융을 공격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10월 1일 신한은행에 이어 2일 KB국민은행에서도 고객정보 유출 사고가 확인되면서 금융권의 보안 우려가 커졌다. 특히 최근 금융권을 대상으로 한 공격에서 AI 기반 자율 침투 도구가 활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AI 해킹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 AI가 해커의 '조력자'에서 '공격자'로
기존의 AI 해킹을 생각하면 해커가 AI에게 코드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하거나 취약점을 찾는 데 도움을 받는 정도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공격 과정 자체를 자동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것은 AI가 시스템을 탐색하고 취약점을 찾은 뒤 공격 경로까지 설계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해커가 직접 수행해야 했던 작업을 AI가 빠르게 처리하면서 공격의 속도와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권에서 우려되는 공격 중 하나가 크리덴셜 스터핑이다. 다른 사이트에서 이미 유출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여러 서비스에 반복적으로 입력해 로그인이 가능한 계정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사람이 하나씩 로그인 정보를 입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AI를 활용하면 여러 서비스에 대한 탐색과 시도를 자동화하고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이용자가 여러 사이트에서 같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습관까지 공격에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AI의 가장 큰 위협은 단순히 '해킹을 더 잘한다'는 데 있지 않다. 사람이 하던 공격 과정을 자동화해 훨씬 빠른 속도로 반복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 금융권이 특히 긴장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AI 해킹은 금융권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질까.
금융기관은 다른 산업에 비해 가치가 높은 데이터를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과 카드사는 계좌와 거래내역뿐만 아니라 소득, 신용, 자산 등 민감한 개인정보도 관리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보고된 전 세계 사이버 사고 가운데 약 5분의 1이 금융 부문에서 발생했으며, 2004년 이후 금융사가 입은 직접적인 손실은 120억달러에 달한다. 이미 금융권은 사이버 공격의 주요 대상이었는데 AI를 활용한 공격까지 본격화될 경우 피해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금융서비스가 점점 더 디지털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은행에 직접 방문해야 처리할 수 있었던 업무를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대부분 처리할 수 있다. 계좌 개설, 송금, 대출, 해외주식 투자까지 하나의 앱에서 가능하다.
소비자에게는 편리한 변화지만,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디지털 시스템에 연결되는 정보와 권한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AI 에이전트'가 금융을 바꾼다면
앞으로는 AI가 금융서비스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AI는 주로 금융상품을 추천하거나 고객의 질문에 답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용자의 요청을 이해한 뒤 실제 금융거래까지 연결하는 AI 에이전트가 등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이번 달 생활비를 확인하고 남은 돈을 저축해줘"라고 요청했을 때 AI가 계좌와 소비내역을 확인하고 필요한 금융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국내 은행권에서도 AI가 고객의 요청을 이해한 뒤 잔액과 환율, 수수료 등을 확인하고 본인인증을 거쳐 송금까지 연결하는 서비스가 개발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금융은 지금보다 훨씬 편리해질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AI가 더 많은 금융정보와 거래 권한에 접근할수록, AI가 공격받았을 때의 피해도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고객의 질문에 답하는 AI가 해킹당하는 것과 계좌 정보를 확인하고 실제 송금까지 할 수 있는 AI가 공격받는 것은 피해의 규모가 다르다. 따라서 금융 AI의 발전은 곧 금융 보안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 금융권도 'AI로 AI를 막는' 시대
금융기관들이 이러한 위험을 손 놓고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금융권에서는 AI를 이용해 AI 기반 공격에 대응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금융은 AI 기반 사이버 보안 솔루션을 활용해 24시간 모의해킹을 실시하고 있으며, KB금융 역시 은행 웹서비스 전반에 대한 AI 기반 보안 점검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공격에 AI가 활용되는 만큼 방어에도 AI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대응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금융권의 AI 전환을 지원하는 동시에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분야 망분리 규제를 완화하고, 금융AI보안연구소를 신설하는 등의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또 6월에는 금융권과 함께 해킹과 보이스피싱 등 AI 시대의 새로운 디지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금융보안원 역시 올해 9월 실제 금융권을 대상으로 한 AI 에이전트 기반 공격 시도가 확인됐다고 밝히며 공격기법과 대응 방안을 공유했다. 이는 금융권의 보안 방식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 첨단 보안보다 먼저 필요한 것
그렇다고 새로운 AI 보안 기술만 도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금융권의 정보 유출 사례를 보면 오히려 기본적인 보안 원칙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는가도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AI 보안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기본적인 인증과 접근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보안에는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금융 보안에서 중요한 것은 가장 최신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만이 아니다. 누가 어떤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지, 중요한 정보를 조회하거나 거래할 때 추가 인증을 요구하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보안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 금융의 AI 전환, 편리함만큼 신뢰도 중요하다
AI는 금융산업을 크게 바꿀 수 있는 기술이다. 고객에게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줄이며, 이상거래를 빠르게 찾아내는 등 금융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금융은 다른 산업과 달리 신뢰가 곧 경쟁력인 산업이다. 소비자는 은행에 자신의 돈뿐만 아니라 개인정보와 금융생활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맡긴다. 아무리 편리한 AI 금융서비스라도 고객이 자신의 정보와 자산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지속적으로 이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 금융기관의 AI 경쟁력은 단순히 '얼마나 똑똑한 AI를 만들었는가'로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AI 시대의 금융 경쟁력은 결국 편리함과 보안을 얼마나 균형 있게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
[매일경제 서포터즈 18기=한양대 이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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