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아진 드라마, 숏폼 시대의 새 장르
‘숏폼 드라마’ 혹은 ‘숏드라마’라고 불리는 마이크로 드라마가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숏폼 플랫폼 ‘도우인’에서 처음 등장한 콘텐츠로, 도시 봉쇄 조치와 모바일 콘텐츠 소비 급증이 맞물리며 신흥 콘텐츠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중국 마이크로 드라마 작품 수는 2022년에 비해 약 100배 증가해 2024년에는 3만6400편으로 늘었고, 시청자는 6억6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마이크로 드라마의 성장 배경에는 달라진 콘텐츠 소비 방식에 있다. 릴스와 같이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이용자에게 1~3분짜리 드라마는 낯선 형식이 아니라 출퇴근길, 점심시간,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가볍게 넘겨볼 수 있는 콘텐츠다.
방송통신위원회·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발표한 ‘2024년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숏폼 이용률은 70.7%로 전년 대비 12.6%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호하는 콘텐츠 유형에서도 41.8%로 1위를 차지했다. 숏폼을 보는 이유는 ‘짧은 시간에 여러 콘텐츠를 볼 수 있어서(68.4%)’와 ‘자투리 시간에 시청할 수 있어서(59.7%)’ 등이 꼽혔다.
마이크로 드라마는 9대 16의 세로 화면과 빠른 전개가 핵심이다. 각 에피소드의 초반에 빠른 전개와 밀도 높은 갈등을 통해 ‘훅’을 던지고 마지막에 반전을 배치해 다음 회차 시청을 유도한다. 익숙하고 직관적인 설정에 갈등과 반전을 빠르게 이어 붙여 시청자의 관심을 붙잡는 데 집중한다. 이를 통해 플랫폼은 짧은 시간에 기존 OTT의 월간 구독료를 상회하는 수익을 창출하고, 주간과 월간 자유이용권 형태로 요금제를 세분화해 전략적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 글로벌 시장, 얼마나 커졌나
시장 규모는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글로벌 숏폼 드라마 앱 다운로드 수는 140% 늘어 8억 5,000만 건을 기록했고, 중국 숏폼 드라마 시장은 연 200% 이상 성장해 2027년에는 1,000억 위안(약 19조 4,0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숏폼 드라마 시장 전체 수익은 2024년 80억 달러(약 13조 원)에서 2026년 160억 달러(약 21조 6,000억 원)로 급팽창했고, 2030년에는 260억 달러(약 35조 1,000억 원)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 중국은 어떻게 게임 체인저가 됐나
① 촬영 인프라와 배우 자원이 만든 '해자'
시안과 정저우의 촬영 인프라, 풍부한 배우 자원, 검증된 이야기를 반복해 재활용하는 리메이크 구조, AI를 활용한 제작과 해외 유통 전략은 선발주자 중국의 ‘경제적 해자’로 작용한다.
시안은 중국 전체 마이크로 드라마의 60% 이상을 만들어내는 제작 거점이고, 정저우는 제작사 820여 곳에 종사자 3만여 명을 거느린 또 다른 거점이다. 지방정부는 촬영장 비용을 감면하고 미분양 건물을 세트로 되살리며 이 저변을 떠받쳐 지역 경제와 연결된 인프라를 통해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배우 자원도 풍부하다. 무명 신인이 주연을 맡을 수 있는 무대가 넓게 열려 있고, 흥행작은 다시 인지도 있는 배우를 불러들인다. 여기에 해외 진출과 커머스, PPL로 이어지는 수익 전략도 다변화되면서 중국의 몸집 불리기는 계속 이어진다.
② 무료 회차로 저변 확보, 절단점에서 결제 유도
수익 구조는 정기 구독형 OTT보다 웹툰에 가깝다. 초반 4~10회 분량을 무료로 풀어 이용자 저변을 확보한 뒤,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지점에서 광고 시청이나 코인 결제를 유도한다. 강력한 절단점으로 반복 시청을 유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부 플랫폼은 구독 모델을 병행한다. 편당 가격은 300~1,000원 수준으로 알려졌으며, 한 시리즈를 끝까지 보려면 2~5만 원가량 소요된다. 초반 몇 편을 무료로 노출해 이용자를 모으고 소액 결제를 유도하는 웹툰의 유통 방식과 유사하다.
③ AI가 바꾸는 성공 공식
AI는 이 경쟁 시장에서 새로운 변수로 작용한다. 제작비와 시간을 얼마나 줄이느냐, 사람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느냐가 새로운 경쟁 축이 됐다. 낮은 제작비만큼 흥행 부진에 따른 위험 부담이 적고, 소비가 빠른 만큼 투자비 회수 기간도 짧은 것이 이점이다. 지난 1월 한 달에만 하루 평균 470편 이상의 AI 마이크로 드라마가 공개됐고, 3월에는 도우인 한 곳에서만 AI 제작 콘텐츠가 5만여 편 늘었다. 데이터아이(DataEye)의 집계에 따르면 인기 차트 100위권에서 AI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전 7%에서 38%로 뛰었다. 올해 1~8월 중국에서 공개된 숏드라마는 43만 편으로 지난해 전체의 13배에 달하며, 이 가운데 AI극이 90%를 넘는다.
효과는 분명하다. 제작비는 70% 이상, 제작 시간은 50% 이상 단축된다. 전통 방식으로 15~30일 걸리던 제작 기간이 AI 도입 후 5일 이내로 단축되고, 제작비는 기존의 5분의 1 수준까지 낮아진다는 얘기도 나온다. 궁궐, 판타지, 시대극처럼 실사 촬영이 어려운 장면을 구현하는 데에도 활용도가 높다. AI는 제작 공정뿐만 아니라 글로벌 서비스 확대를 위한 번역과 더빙, 마케팅 영상 제작, 개인화 추천 시스템 등 유통 과정에도 쓰인다. 더 많은 실험과 노출을 위해 인공지능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양상으로 낮은 제작비, 빠른 생산, 데이터 피드백, 플랫폼 과금이 결합된 하나의 거대한 산업 시스템이 만들어진 셈이다.
④ 미국·한국·일본·동남아, 전 세계로 향하는 수출
중국 업체들은 미국과 한국, 일본, 동남아 등 해외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현지인의 외모와 정서에 맞춘 디지털 인간과 스토리를 앞세워 단순 번역이 아닌 문화 맞춤형 콘텐츠를 만든다. 올해 해외 수출 규모는 50~60억 달러로 예상된다.
중국이 해외 시장을 겨냥해 활용한 흥행 공식은 이미 검증된 히트작을 번역하거나 각색하는 것이다. 저예산으로 반응을 먼저 확인한 후 반응이 좋으면 인지도 있는 배우와 더 큰 제작비를 들여 다시 만드는 식으로 IP 가치를 단계적으로 키운다.
미국 시장 매출은 올해 말까지 15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 상위권 마이크로 드라마 앱 네 곳은 모두 중국 자본 기반이고, 2025년 이 부문 인앱 매출은 9억 6,600만 달러로 2022년에 비해 40배 넘게 늘었다. 파장은 할리우드 노동시장까지 확대됐다. 뉴욕타임스는 로스앤젤레스 영화 제작 현장에서 마이크로 드라마가 사실상 '유일하게 돌아가는 게임'이라는 제작진의 평가를 전하며, 기존 영화·TV 제작이 위축된 상황에서 배우와 촬영 스태프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K콘텐츠의 미래는?
숏폼 드라마는 단발성 트렌드를 넘어 미디어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적 전환으로 평가된다. 한국에서도 소비가 늘고 국내 제작 작품이 늘면서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고 있지만, 중국이 선점한 영역인 만큼 한국은 후발주자로서 여러 약점을 안고 있다.
● 국내 시장의 성장세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 콘텐츠 이용행태조사'에서 숏폼 콘텐츠 이용률은 58.6%였다. 이 중 숏드라마 이용률은 13.5%로 아직 소수지만, 20대 비율이 27.0%에 달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관심이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8월 주요 숏폼 드라마 플랫폼의 국내 월간 이용자는 298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3배 늘었다. 숏드라마 앱 매출은 월 600만 달러를 넘기며 세계 4위 수준을 기록했고, 비글루는 국내 매출 3위에 올랐다. 제작뿐 아니라 인력 양성으로도 대응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 시장 규모에 대한 추산도 나왔다. 카카오벤처스는 2024년 국내 숏드라마 시장을 약 6,500억 원으로 추산했고, 딜로이트는 글로벌 숏드라마 인앱 수익이 2025년 38억 달러에서 2026년 78억 달러로 늘 것으로 전망했다. 2024년 기준 매출과 순이익을 함께 공개한 드라마박스는 매출 3억 2,300만 달러, 순이익 1,000만 달러를 기록해 수익성을 보여줬다.
● K숏폼의 차별화 : 자극과 서사의 균형
숏폼 콘텐츠의 본산이자 거대 자본이 모이는 중국에서 한국 특유의 제작 방식과 세련된 연출력이 주목받고 있다. 중국 숏폼의 초기 성장이 극단적 자극에 주로 의존했다면, K숏폼은 한국 드라마 고유의 밀도 높은 서사와 섬세한 감정선을 이식해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K숏폼은 자극과 서사의 적절한 균형감을 고수하고 있다. 1분 남짓한 분량 안에 도파민을 자극하는 반전과 출생의 비밀, 복수, 재벌 로맨스 같은 클리셰를 배치하면서도 인물 관계와 감정 서사를 정교하게 쌓아 일회성 소비에 그치지 않도록 설계했다. 인스턴트식 자극에 피로감을 느낀 시청자에게 이 점이 주요 흥행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작비와 기간이 짧아 신인 감독·배우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무대라는 점도 장점이다. 국내 플랫폼과 시장의 성장세가 확산되면서 후발주자의 한계를 넘어설 '틈새 시장'을 찾는 국내 사업자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무엇인가
문제는 수익화다. 숏드라마 시청 경험자의 92.3%가 유튜브 같은 범용 플랫폼에서 작품을 접했고, 전용 플랫폼에서 유료 결제를 해 본 비율은 5.3%에 그쳤다.
불법 유통과 저작권 침해도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영상 분량이 짧다 보니 틱톡, 쇼츠, 릴스 등 SNS를 통한 무단 캡처와 불법 재가공 영상이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어, 기술적·법적 보호막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은 후발주자로서 플랫폼의 시장 확대와 콘텐츠 제작의 경험 축적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단기간에 수익 관점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장기적인 안목의 전략이 요구된다.
[매일경제 서포터즈 18기=중앙대 원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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