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 하루 만에 멜론 1위
지난 1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 무대에 익숙한 이름이 다시 올랐다. SM엔터테인먼트를 만든 이수만 프로듀서다. 그는 직접 세운 A2O엔터테인먼트의 데뷔 쇼케이스에서 15인조 보이그룹 ‘A2O 소울’과 9인조 걸그룹 ‘A2O 라이트’를 공개했다. 2023년 하이브에 SM 지분을 넘기며 맺은 경업금지 조항이 올해 초 풀렸고, 이번이 국내 복귀 첫 무대였다.
반응은 생각보다 빨랐다. A2O 라이트의 데뷔곡 '네온(NEON)'은 13일 공개되고 하루 만인 14일 밤 멜론 톱100 1위에 올랐다.
온라인 반응을 보면 공통된 단어가 하나 있다. "알던 맛." 보아 같은 멤버들을 소녀시대만큼 모아서 f(x)처럼 데뷔시킨 느낌이라는 말도 있었고, K팝에서 사라졌던 걸 다시 살려냈다는 평가도 있었다. 3분이 넘는 곡 길이, 댄스 브레이크, 시원하게 뻗는 고음. 요즘 2분대 곡이 흔해진 K팝에서는 오히려 낯설어진 것들이다. 작곡과 프로듀싱에 SM 시절 이수만과 함께했던 유영진이 참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보컬 디렉팅부터 익숙하다"는 말도 나왔다.
재밌는 건, 사람들이 이 ‘SM다움’을 SM이 아닌 곳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 핑크블러드는 뭘 좋아했나
SM 아티스트와 콘텐츠를 오래 응원해온 팬들을 '핑크블러드'라고 부른다. 이들이 SM을 좋아한 이유를 그룹 하나로 설명하긴 어렵다. 어느 그룹을 들어도 느껴지는 ‘SM 특유의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SMP(SM Music Performance)가 있다. 유영진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 스타일은 강한 사운드와 메시지를 퍼포먼스로 그대로 옮기는 SM만의 방식이다. 대중성보다 색깔을 먼저 밀어붙였던 f(x), 노래 밖까지 이야기가 이어지는 엑소의 초능력 세계관과 에스파의 '광야'도 같은 맥락이다. 이수만이 늘 말하던 '컬처 테크놀로지'는 NCT, WayV처럼 도시와 국가를 기반으로 팀을 늘려가는 현지화 전략으로 나타났다.
처음 들을 땐 어렵고 낯설어도, 결국 “SM이 하면 SM답다”는 믿음. 핑크블러드를 묶어온 건 그 믿음이었다.
● 이수만이 떠난 뒤
2023년, 그 공식이 흔들렸다. SM은 그해 2월 이수만과의 프로듀싱 계약 종료를 알리면서 ‘SM 3.0’을 발표했다. 한 명의 총괄 프로듀서가 모든 아티스트를 이끌던 구조 대신, 아티스트별 제작센터 5곳과 가상 아티스트 제작센터 1곳을 두는 멀티 제작센터 체제로 바꾸겠다는 내용이었다.
팬들의 마음은 복잡했다. 이수만이 지분을 하이브에 넘기는 과정에서 "믿음을 배신당했다"는 실망이 나왔고, 동시에 SM 특유의 개성이 사라질까 하는 걱정도 컸다. 유영진은 공식 입장문에서 "이수만 선생님의 프로듀싱이 없는 SM은 진정한 SM이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그 뒤로 SM은 새 체제에서 신인을 키워왔다. 2025년 2월, 에스파 이후 약 5년 만에 나온 걸그룹 하츠투하츠는 데뷔 앨범 초동 약 40만 장을 기록했고, 최근 곡 ‘RUDE!’로 멜론 일간 차트 3위까지 오르며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다만 몽환적이고 산뜻한 이미지로 출발한 이들의 음악을 두고 일부 팬들 사이에선 "예전에 알던 SM 맛이랑은 좀 다르다"는 말도 있었다. 회사가 새 색깔을 찾는 동안, 오래된 팬들은 조금씩 목이 말랐던 것이다.
● A2O가 건드린 지점
A2O를 향한 반응은 이 갈증 위에 있다. 팬들이 그리워하던 요소가 거의 그대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유영진의 사운드와 보컬 디렉팅, ‘ACE(A2O 코스믹 에픽)’라는 세계관, 멤버들이 팀에 묶이지 않고 솔로나 유닛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시스템, 중국·일본·태국 등 여러 나라 멤버로 꾸린 구성까지. 쇼케이스에선 퍼포먼스를 3차원으로 기록하는 VR 기술 ‘4DGS’와 AI 아티스트 대화 플랫폼까지 내놓으며 '컬처 테크놀로지'를 다시 꺼냈다.
마케팅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면, A2O는 새 브랜드를 만들었다기보다 팬들 기억 속에 이미 있던 브랜드를 통째로 옮겨온 것처럼 보인다. 신인 그룹은 보통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데만 한참이 걸린다. A2O는 "이수만이 만든 그룹"이라는 한 줄로 그 과정을 건너뛰었다. 데뷔 하루 만의 멜론 1위가 그 한 줄의 힘이다.
● 익숙함, 언제까지 통할까
물론 익숙함이 계속 무기가 될지는 모르겠다. 멤버 조합을 자유롭게 바꾸는 시스템은 2016년 발표된 NCT와 크게 다르지 않고, 팬 소통 플랫폼도 위버스나 버블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일부 매체가 "차별성은 글쎄"라고 물음표를 단 것도 그래서다. 10대 초중반 멤버가 많아 평균 연령이 낮다는 점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이수만 본인도 쇼케이스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곡"이라고 했다. 반가움으로 시작한 관심이 오래가려면, 알던 맛 다음에 올 새로운 맛이 필요하다.
그래도 이번 데뷔를 보며 계속 드는 생각이 있다. 팬들이 사랑했던 ‘SM다움’은 회사에 있었을까, 아니면 사람에게 있었을까. SM이라는 이름을 떠난 곳에서 SM의 맛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의 브랜드가 그걸 만든 사람의 감각과 얼마나 깊이 엮여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SM 3.0’의 SM과 SM 밖의 이수만. 올가을 K팝에서 가장 궁금한 대결이다.
[매일경제 서포터즈 18기=국민대 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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