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리사가 쓴 안경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인공지능(AI)을 결합한 '메타 글래스'다.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도 사진과 영상을 찍고 AI 기능을 쓸 수 있는 이 제품은 기술과 패션을 결합한 새로운 소비재로 주목받고 있다. 메타는 2026년 9월 리사와 협업한 컬렉션을 공개하며 AI 웨어러블 대중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AI 글래스가 그리는 미래가 늘 편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난 10월 10일 연세대 수시 논술시험에서 AI 기능을 갖춘 스마트 안경을 착용한 수험생이 적발됐다. 감독관의 사전 점검 때는 일반 안경을 썼다가 시험이 시작되자 바꿔 낀 것이다. 일주일 전 서울시립대 논술시험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왔다. 일상에서 편리한 기술이 시험장에서는 공정성을 위협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같은 기술이 한쪽에서는 혁신적인 상품으로, 다른 쪽에서는 사회적 문제의 원인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 기술은 어떻게 매력적인 소비재가 되는가
메타 글래스의 특징은 AI 기능뿐 아니라 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에도 있다. 메타는 안경이라는 익숙한 제품에 AI를 입히고, 패션 브랜드와 유명인의 이미지를 더해 기술에 대한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췄다. 소비자는 새로운 기술을 사는 동시에 자신의 스타일과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낼 수 있다.
마케팅 관점에서도 의미 있는 전략이다. 기술이 복잡하고 낯설수록 소비자가 기능을 이해하고 구매를 결정하기까지 장벽이 높아진다. 반면 매일 쓰는 안경에 AI를 접목하면 소비자는 이를 특별한 기기가 아닌 생활용품으로 받아들인다. 유명인과의 협업은 관심을 끌어올리고 새로운 소비층에 다가가는 통로가 된다.
물론 광고의 화제성이 제품의 지속적인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제 사용에서 충분한 편익을 주는지, 가격만큼의 가치를 갖췄는지, 소비자의 신뢰를 지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기업은 관심을 구매로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을 계속 쓸 이유까지 만들어야 한다.
● 편리함 뒤에 가려진 사회적 비용
문제는 사용자가 얻는 편익이 주변 사람에게 똑같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AI 글래스는 두 손을 자유롭게 하고, 정보 검색이나 촬영을 한결 간편하게 만든다. 시각장애인의 주변 환경 인식이나 작업 현장의 정보 전달처럼 쓸모 있는 활용처도 많다.
반면 촬영 기능이 탑재된 안경은 주변 사람이 촬영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게 만든다. 사용자는 기록의 편리함을 누리지만, 촬영 대상자는 자신의 모습이나 대화가 동의 없이 기록될 수 있다는 불안을 떠안는다. 시험장에서는 AI를 통한 정보 접근이 다른 수험생과의 공정성을 해칠 수도 있다.
이 문제는 경제학의 '외부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외부효과란 어떤 경제활동이 거래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제3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그 영향이 시장가격에 반영되지 않는 현상이다. AI 글래스의 가격에는 구매자가 누리는 편익만 담길 뿐, 촬영 대상자가 떠안는 불안은 포함되지 않는다.
시험장 사례는 이 비용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보여준다. 교육 당국은 다음 달 19일 치러지는 수능에서 스마트 안경을 반입 금지 물품으로 명시하고, 시험 중 착용하다 적발되면 해당 시험을 무효 처리하고 이듬해 응시 자격까지 정지하기로 했다.
감독관은 수험생에게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올려두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을 강화하는 데 드는 인력과 시간, 정직한 수험생까지 감수해야 하는 불편 역시 제품 가격에는 빠져 있다. 일부의 오용이 사회 전체의 관리 비용을 키우는 셈이다.
기업이 편리함과 판매에만 집중하는 사이 개인정보 침해나 시험의 공정성 같은 사회적 비용이 외면된다면, 시장에서의 성공을 사회 전체의 편익으로 보기는 어렵다.
● 혁신을 막기보다 신뢰를 설계해야
그렇다고 위험을 이유로 AI 글래스를 일률적으로 막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 제품으로 풀기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가능성은 살리되 부작용은 줄이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기업은 설계 단계부터 개인정보 보호와 오용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주변 사람이 촬영 여부를 분명히 알 수 있게 하고, 사용자가 촬영과 데이터 처리 방식을 쉽게 이해하도록 안내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전 점검을 피해 기기를 바꿔 끼는 사례가 나온 만큼, 시험기관은 외형 점검에 그치지 않고 시험 중 수시 확인 절차와 명확한 제재 기준을 함께 갖춰야 한다. 공공장소 역시 공간의 특성과 이용자의 권리를 고려한 합리적인 사용 기준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책임은 규제를 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가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신뢰를 쌓는 것 역시 장기적인 경쟁력이다. 단기적으로는 편의성과 기능이 구매를 이끌지만, 장기적으로는 제품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느냐가 시장의 크기를 결정한다.
AI 글래스는 약인가, 독인가. 정답은 기술 자체에 있지 않다. 같은 기능도 사용 목적과 환경, 이를 관리하는 기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혁신으로 시장을 넓히려는 기업이라면 제품의 성능만큼 그 제품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고민해야 한다. 기술의 미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
[매일경제 서포터즈 18기=이화여대 원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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