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친구 삭제는 안 했는데 ‘친한 친구’에서는 뺐다… 우리는 왜 조용히 관계를 정리할까?

부산대
강민채 서울대 · 18기 서포터즈
2026.09.12

카톡 답장은 사흘째 미뤄뒀다.

그렇다고 바빴던 건 아니다. 그 사이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세 개를 올렸고, 친구의 스토리에도 하트를 눌렀다. 팔로우를 끊지도, 차단하지도 않았다. 다만 ‘친한 친구’ 목록에서는 그 사람을 조용히 뺐다. 답장은 하지 않지만, 내 일상이 전부 보이게 두고 싶지도 않다. 관계를 끝내기엔 애매하고, 예전처럼 가깝게 지내기에도 피곤한 사람들. 우리는 언제부터 말을 꺼내는 대신 ‘읽음’과 초록색 동그라미로 관계의 거리를 조절하게 됐을까?

인스타그램의 ‘친한 친구’ 기능은 이용자가 스토리를 보여줄 대상을 직접 골라 공개 범위를 제한하는 설정이다. 목록에 포함된 사람만 초록색 테두리의 스토리를 볼 수 있고, 목록에서 제외된 사람에게는 별도의 알림이 가지 않는다. 팔로우를 끊거나 차단하지 않아도 내 일상의 일부만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셈이다.

인스타 ‘친한 친구’ 기능은 선택한 이용자에게만 스토리를 공개할 수 있다.
인스타 ‘친한 친구’ 기능은 선택한 이용자에게만 스토리를 공개할 수 있다.

● “언팔까지는 너무 티 나서요”

대학생 A씨(22)는 최근 인스타그램 ‘친한 친구’ 목록에서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을 뺐다. 다툰 일은 없었다. 다만 A씨는 “예전처럼 자주 연락하지도 않는데, 내 사적인 이야기까지 계속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며 “언팔을 하면 너무 노골적으로 관계를 끊는 느낌이라 친한 친구에서만 뺐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생 B씨(21)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는 “헤어진 뒤에도 서로 팔로우는 유지했지만, 새로 만나는 사람이나 일상적인 고민을 전 연인에게까지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며 “차단은 너무 감정적으로 보일까 봐 망설여졌다”고 했다. B씨에게 ‘친한 친구’ 기능은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관계를 정리한다기보다, 상대에게 보이는 내 일상의 범위를 조절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반면 목록에서 제외된 경험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대학생 C씨(20)는 “친구들이 모두 아는 이야기를 나만 나중에 알았을 때, 친한 친구에서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괜히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다”고 말했다.

친한 친구 목록은 단순히 가장 가까운 사람을 모아두는 공간이라기보다, 관계마다 다른 거리를 설정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팔로우 관계는 유지한 채 여전히 서로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안부를 주고받지만, 초록색 테두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일상은 따로 정해진다.

● 관계가 ‘기록’으로 판단될 때

카카오톡의 읽음 표시와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조회 기록은 원래 이용자에게 편의를 주는 기능이다. 메시지가 전달됐는지, 친구가 내가 올린 일상을 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관계 안에서는 이러한 단순한 기록이 감정의 증거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대학생 D씨(21)는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가 이틀째 답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그 친구가 자신의 스토리는 확인한 것을 봤다.

“바쁘면 답장이 늦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스토리를 봤다는 기록까지 남으니까 ‘나한테 답할 마음은 없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냥 넘어가려다가도 계속 신경 쓰였어요.”

답장은 없는데 스토리는 봤다. 평소 보이던 ‘친한 친구’ 스토리가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다. 게시물에는 ‘좋아요’를 눌렀지만 개인적인 메시지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이용자들은 이런 장면을 마주할 때, 화면에 남은 기록을 하나씩 조합해 상대의 마음을 추측한다.

문제는 SNS가 ‘온라인에 접속했는지’와 ‘나에게 답할 마음이 있는지’를 구분해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토리를 넘기는 데는 몇 초면 충분하지만, 누군가의 고민에 답장을 보내는 데에는 시간과 감정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조회 기록은 상대가 나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인상을 남기기 쉽다.

‘친한 친구’ 기능도 마찬가지다. 이용자에게는 사적인 일상을 골라 공유할 수 있는 유용한 기능이지만, 목록에서 제외된 사람에게는 설명 없는 거리두기로 느껴질 수 있다. 한쪽은 말없이 관계의 경계를 조절하고, 다른 한쪽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채 자신의 행동을 되짚는다. 관계를 정리하거나 거리를 두는 과정에서 원래 필요했던 대화가 설정 하나로 대체되는 셈이다.

물론 모든 늦은 답장과 스토리 제외가 관계의 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혼자 있고 싶은 날이 있고, 모든 일상을 같은 사람에게 공개할 필요도 없다. 다만 SNS의 기능이 관계를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 ‘답을 받은 사람’과 ‘답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나눌 때, 우리는 화면 속 작은 기록에 실제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메시지 읽음 표시와 좋아요, 스토리 조회 기록 등 SNS의 반응은 관계의 온도를 가늠하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메시지 읽음 표시와 좋아요, 스토리 조회 기록 등 SNS의 반응은 관계의 온도를 가늠하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 관계를 끊지 않는 시대의 거리두기

SNS는 사람을 더 쉽게 연결해 줬지만, 동시에 관계의 거리를 더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다. 팔로우를 끊거나 차단하지 않아도 된다. 답장의 속도를 늦추고, 스토리를 보여줄 범위를 좁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누군가와의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관계를 단번에 끝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편리하다. 불편한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갈등을 크게 만들지 않은 채 내 일상을 지킬 수도 있다. 그러나 말없이 만들어진 거리는 결국 남은 사람에게 해석의 몫을 남긴다.

답장은 안 했지만 스토리는 올렸다. 친구 삭제는 하지 않았지만 친한 친구에서는 뺐다. 화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작은 변화가 관계의 온도를 알려주는 신호가 된다. 다음번 초록색 동그라미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과연 기능의 변화를 읽는 걸까, 관계의 변화를 읽는 걸까?

[매일경제 대학생 서포터즈 18기=서울대학교 강민채]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