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회사 내규에 따름'… 연봉 없는 채용공고 앞에서 멈추는 취준생

서울대
강민채 서울대 · 18기 서포터즈
2026.09.22

메뉴는 자세히 적혀 있는데 가격표만 없는 식당이 있다.

“가격은 식사 후에 알려드릴게요.” “정확한 금액은 손님을 보고 정하겠습니다.”

이런 식당이라면 들어가기 전부터 망설여질 것이다. 얼마를 내야 할지 모른 채 주문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취업 준비생에게는 이상하게도 너무 익숙한 장면이다. 채용공고를 한참 읽는다. 내가 해온 활동과도 맞고, 우대사항도 충족한다. 근무지도 괜찮고 전형 절차도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지원해볼까?’ 싶어 마지막으로 급여란을 확인한다.

● 회사 내규에 따름. 면접 후 결정

채용정보를 살펴보는 취업 준비생들
채용정보를 살펴보는 취업 준비생들 <연합뉴스>

채용공고를 읽는 데는 몇 분이 걸렸지만, 창을 닫는 데는 몇 초면 충분하다. 지원자는 연봉을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소개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고치고, 면접까지 준비해야 한다. 취업 준비생들에게 연봉은 단순히 “얼마를 받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회사가 나의 시간과 역량을 어느 정도의 가치로 보는지, 그리고 이 지원에 시간을 들일 만한지 판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보에 가깝다. 그런데도 많은 공고들은 업무 내용과 자격 요건은 자세히 써두면서, 정작 지원자가 가장 현실적으로 궁금해할 정보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취업 준비생은 왜 연봉이 없는 공고 앞에서 지원 버튼보다 뒤로 가기 버튼을 먼저 누르게 될까?

● 지원서를 쓰기 전, 먼저 드는 비용

취업 준비생에게 ‘지원’은 버튼 한 번을 누르는 일이 아니다. 지원서 문항에 맞춰 경험을 다시 정리하고, 기업과 직무를 조사하고, 포트폴리오를 고친다. 서류를 통과하면 예상 질문을 준비하고, 면접 일정에 맞춰 수업이나 다른 일정을 조정하기도 한다. 공고 하나에 지원하기 위해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을 쓰는 이유다. 특히 기업별 맞춤 지원서가 중요해진 현재 채용 환경에서 ‘일단 넣어보자’는 선택도 부담스럽다. 지원자는 회사의 사업과 직무를 분석해 자신이 왜 적합한 사람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지원 하나를 늘릴수록 들이는 시간도 함께 늘어난다.

그런데 연봉과 보상 정보가 없다면 지원자는 그 시간과 노력을 들일 만한 일자리인지 처음부터 판단하기 어렵다. 직무가 아무리 흥미롭고 회사의 이름이 좋아 보여도, 내가 기대하는 생활 수준과 조건이 크게 다르다면 그 지원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맞지 않는 선택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혼자 서울에서 생활해야 하는 지원자들에게는 주거비와 교통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가 중요할 수 있다. 야간·교대근무가 있는 직무를 지원하는 사람이라면 수당이 기본급에 포함되는지, 별도로 지급되는지도 현실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 연봉은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라 지원자의 생활 계획과도 매우 직결된 조건인 것이다.

그래서 연봉을 확인하는 일은 ‘돈만 따지는 태도’가 아니다. 지원자가 자신의 시간과 역량을 어디에 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가깝다.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지원을 권하는 방식은 결국 지원자에게만 먼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셈인 것이다. 지원서를 쓰기 전, ‘이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는가’만큼이나 ‘나는 이 회사에 지원할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연봉이 없으면, 지원자는 ‘탐정’이 된다

연봉 비공개가 불편한 이유는 단순히 궁금해서가 아니다. 지원자는 공고에 없는 정보를 얻기 위해 채용 플랫폼의 추정 연봉을 찾아보고, 유튜브와 SNS, 커뮤니티를 검색한다. 선배나 현직자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기도 한다. 공식 채용공고에는 없지만, 지원 여부를 결정하려면 어떻게든 알아내야 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모은 정보가 정확하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채용 플랫폼의 연봉 정보는 과거 자료이거나 직군 전체의 평균일 수도 있고, 커뮤니티 후기는 작성자의 직급·경력·입사 시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성과급 포함 연봉’인지, 각종 수당을 제외한 기본급인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원 기업 선택 시 가장 중요한 정보’ 관련 조사 인포그래픽
‘지원 기업 선택 시 가장 중요한 정보’ 관련 조사 인포그래픽 <진학사 캐치>

실제로 진학사 캐치가 구직자 11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3%는 기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정보로 ‘연봉·초봉’을 꼽았다. 반면 채용공고나 기업 정보를 확인할 때 가장 찾기 어려운 정보 역시 ‘연봉·초봉’이라는 응답이 37%로 가장 많았다. 중요도는 가장 높은데, 확인은 가장 어려운 정보인 셈이다. 또한 응답자의 50%는 연봉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지원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채용공고에 임금 수준이나 범위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에는 80%가 찬성했다. 또 연봉 정보가 없는 기업에 직접 문의한 경험이 없다는 응답도 88%에 달했다. 연봉을 묻는 순간 ‘조건만 따지는 지원자’로 보일 수 있다는 부담,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그 이유로 뒤따랐다.

결국 취업 준비생은 가장 중요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가장 조심스러워져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채용공고에는 회사가 원하는 지원자의 조건이 아주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전공, 경험, 자격증, 근무 가능 여부까지. 하지만 지원자가 회사를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회사 내규’라는 네 글자 뒤에 가려진다. 일자리의 가격표를 묻는 일이 왜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 됐을까.

● 기업은 왜 연봉을 공개하지 않을까

물론 기업 입장에서도 채용공고에 연봉을 정확히 적기 어려운 이유는 있다. 같은 직무라도 경력과 보유 역량, 근무지와 근무 형태에 따라 보상 수준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업직은 기본급보다 성과급 비중이 클 수 있고, 교대근무 직무는 야간·휴일 수당에 따라 총보수가 달라질 수 있다. 성과급이나 인센티브 역시 개인과 회사의 실적에 따라 변동된다. 기존 직원과 새로 들어오는 직원의 임금 격차가 드러나는 문제, 경쟁사에 인건비 수준을 공개해야 한다는 부담도 기업이 연봉 공개를 망설이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기업이 공고 단계에서 지원자 개인의 최종 연봉을 확정하기 어려운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한 푼’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설명일 뿐, 아무 정보도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채용공고에 아래 정도만 적혀 있어도 지원자는 훨씬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 해당 직무의 신입 연봉 또는 초봉 범위
  • 고정급에 포함되는 항목
  • 성과급·인센티브의 지급 기준 또는 비중
  • 야간·휴일근무 수당의 별도 지급 여부
  • 수습 기간 중 급여와 정규 전환 조건

예컨대 ‘신입 연봉 3400만~3800만원, 성과급 별도, 수습 3개월 동일 급여 지급’처럼 범위와 기준을 안내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연봉은 경력과 직무 역량에 따라 범위 내에서 결정’이라고 덧붙이면 기업도 협상 여지를 남길 수 있다. 이 정보가 있다고 해서 기업이 지원자 한 사람의 최종 연봉을 미리 확정짓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원자는 이 직무의 보상 수준이 자신의 생활 계획에 맞는지, 성과급을 제외한 고정 수입은 어느 정도인지, 지원과 면접 준비에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는지를 미리 판단할 수 있다. 모든 정보를 다 공개하는 것과 ‘회사 내규’라는 말 뒤에 숨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더 넓은 선택지가 있다.

● 연봉 공개는 기업에 손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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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을 공개하면 지원자가 돈만 보고 회사를 고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연봉을 숨긴다고 해서 지원자의 기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원자는 채용 플랫폼의 추정 연봉과 현직자 후기, 커뮤니티 글을 뒤져 나름의 기준을 세우게 된다. 문제는 그 기준이 공식정보가 아니라 추측과 소문에 기대게 된다는 데에 있다. 서류와 면접을 모두 거친 뒤에야 실제 보상이 기대와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시간 낭비는 지원자만의 몫이 아니다. 기업도 서류를 검토하고, 면접 일정을 조율하고, 채용 담당자와 현업 직원의 시간을 투입한다. 최종 단계에서 처우 협상이 결렬되거나, 입사 뒤 보상이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조기 퇴사하는 상황도 기업에는 비용이다.

반대로 연봉 범위와 보상 구조를 미리 안내하면 지원자는 자신의 기준에 맞는 회사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기업 역시 실제 조건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는 지원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원자 수를 무작정 늘리는 것보다, 조건이 맞는 지원자가 지원하도록 만드는 편이 채용의 질을 높이는 길일 수 있다. 연봉 공개는 지원자에게만 유리한 요구가 아니다. 서로의 기대가 다른 상태에서 끝까지 채용 절차를 밟는 일을 줄여주는, 채용 시장의 미스매치 방지 장치에 가깝다.

● ‘회사 내규’를 바꾸려는 정부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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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반 채용공고 전반에 연봉 범위를 일률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의무는 없다. 그래서 급여란에 ‘회사 내규에 따름’이나 ‘면접 후 결정’이라고 적혀 있어도 지원자가 사전에 이를 확인할 방법은 많지 않다. 고용노동부도 최근 임금 정보를 알기 어려운 채용공고를 개선하는 방안을 과제로 논의했다. 이는 ‘깜깜이 채용공고’가 지원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고, 채용 과정의 정보 격차를 키운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논의다.

다만 이는 당장 모든 기업에 연봉 공개를 의무화하겠다는 확정 방침은 아니다. 정부가 어떤 정보의 공개를 어디까지 요구할지, 기업 규모와 직무별 특성을 어떻게 반영할지 등은 앞으로 구체화되어야 할 과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조건 공개’와 ‘완전 비공개’ 사이의 현실적인 기준을 만드는 일이다. 개인별 최종 연봉을 공고 단계에서 확정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지원 판단에 필요한 최소한의 보상 정보만이라도 안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이 서울고용노동청에서 '고용노동 분야 정상화 과제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이 서울고용노동청에서 '고용노동 분야 정상화 과제 추진 TF 2차 회의'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모든 기업이 지원자 개인의 최종 연봉을 공고 단계에서 확정해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무와 경력, 성과급 여부에 따라 실제 보상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적어도 채용공고에는 지원자가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상 정보가 있어야 한다. 제안하고 싶은 기준은 직무별 연봉 또는 초봉 범위, 고정급과 성과급의 구분, 수습 기간 중 급여, 야간·휴일근무 수당의 별도 지급 여부로 4가지다.

이 4가지가 있어야 지원자는 ‘총액은 높지만 성과급 비중이 큰 일자리’와 ‘고정급은 다소 낮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분할 수 있다. 수습 기간에는 급여가 달라지는지, 교대근무 보상은 어떻게 책정되는지도 미리 알 수 있다. 이는 지원자가 기업의 조건을 비교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채용공고를 읽는 취업 준비생들은 회사가 원하는 조건을 하나씩 확인한다. 전공, 경험, 자격증, 근무 가능 여부까지. 그렇다면 기업 역시 지원자가 회사를 선택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보여줘야 한다. 연봉은 면접이 끝난 뒤에야 조심스럽게 꺼낼 질문이 아니라, 지원을 결정하기 전에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 정보다. ‘회사 내규에 따름’이라는 글자 대신 판단할 수 있는 보상 기준을 적는 것. 그것이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불필요한 추측과 눈치를 줄이고, 기업에는 실제 조건이 맞는 지원자를 만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매일경제 대학생 서포터즈 18기=서울대 강민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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