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경제적 성과를 국민과 나눌 수 있을까
지난 5월 국내에서 이 질문이 뜨거운 논쟁으로 떠올랐다. 김용범 당시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을 국민에게 환원하는 방안으로 ‘국민배당금제’를 제안하면서다.
김 실장은 AI 인프라 공급망에서 한국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으로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 초과 세수가 발생한다면 그 재원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AI 시대의 성과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만들어지는 만큼, 그 과실을 국민에게 환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논쟁이 커지자 당시 대통령실은 해당 구상이 정부의 공식 정책이나 내부 검토안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반도체 초과 세수의 활용 방안을 정부가 별도로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기업의 초과이윤을 직접 국민에게 나누자는 의미가 아니라, AI 부문 초과이윤으로 발생한 국가의 초과 세수를 국민에게 배당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국민배당’이라는 단어가 던진 질문은 남았다. AI가 만들어내는 막대한 부를 누가, 어떻게 나눠 가져야 하는가.
● AI가 키운 파이, 누구에게 돌아갈까
AI의 영향력은 이제 특정 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생성형 AI는 사무직의 업무 방식을 바꾸고 있으며,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 등 관련 산업에도 막대한 투자를 불러오고 있다.
특히 한국 경제에서 AI와 반도체의 연결고리는 더욱 중요하다. AI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반도체 수요가 커지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의 실적과 세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업의 이익이 증가하고 관련 산업이 성장하면 국가가 거두는 세수도 늘어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경제의 파이가 커졌을 때, 그 파이를 누가 얼마나 가져가는가.
AI는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인 동시에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AI가 생산성과 소득을 높일 가능성이 있지만, 노동 대체와 자본수익 증가를 통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AI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 사이의 격차가 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결국 AI 시대의 경제 문제는 단순히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는 곧 ‘그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진다.
● 미국에서도 시작된 ‘AI 과세’ 논쟁
AI가 만들어낼 부를 어떻게 사회와 나눌 것인지는 비단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AI와 자동화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과세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는 AI와 로봇의 확산이 노동시장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며 ‘로봇세(robot tax)’를 제안했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 기업의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늘리는 경우,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의 일부를 세금으로 거둬 사회적 안전망과 노동자의 전환을 지원하자는 취지다. 게이츠는 AI로 인한 불평등 확대를 우려하면서 인간이 맡아야 할 일자리를 남겨둘 필요성도 제기했다.
미국의 정책 연구기관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등장했다. Urban Institute는 올해 3월 AI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를 미국 국민에게 배당하는 방안을 하나의 정책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AI에서 발생하는 가치의 일부를 공공기금으로 축적하고, 이를 시민에게 배당하는 방식이다.
물론 한국의 ‘국민배당금제’와 미국의 ‘로봇세’ 또는 AI 배당 논의는 구체적인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던지는 질문은 같다. AI가 만들어낸 생산성의 과실을 AI를 소유한 기업과 자본에만 맡길 것인가, 아니면 사회 전체가 공유할 것인가.
결국 AI 시대의 과세 논쟁은 단순히 ‘AI에 세금을 매길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AI가 만들어낸 경제적 가치를 누가 소유하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가깝다.
● ‘AI 세금’과 ‘국민배당’은 무엇이 다를까
AI가 가져올 분배 문제를 이야기할 때 흔히 ‘AI세’나 ‘로봇세’가 함께 언급된다. 하지만 AI세와 국민배당은 같은 개념은 아니다.
AI세 또는 로봇세가 AI와 자동화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에 어떻게 과세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라면, 국민배당은 그렇게 확보한 재원이나 AI 산업 성장으로 발생한 추가적인 경제적 가치를 사회에 어떻게 환원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쉽게 말해 AI세가 ‘어디서 돈을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라면, 국민배당은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인 셈이다. 문제는 AI 자체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 기업의 이익이 증가했다고 가정해보자. 이익 증가분을 전부 AI가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을까.
연구개발 투자와 생산시설, 노동자의 기술과 노력, 정부의 산업정책, 글로벌 수요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무엇보다 AI로 인해 발생한 이익만 다른 요인과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IMF 역시 AI 자체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AI에 대한 특정 세금은 실제로 적용하기 어렵고 투자와 혁신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AI 확산으로 자본소득의 비중이 커지고 불평등이 심화될 경우, 자본소득과 법인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사회보장과 교육에 재원을 투입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따라서 ‘국민배당’ 논의의 핵심은 반드시 AI에 세금을 매기느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AI 산업 성장으로 발생한 추가적인 경제적 가치와 세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있다.
●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이 정말 정답일까
그렇다면 AI와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국민에게 직접 배당하는 것은 어떨까.
장점은 명확하다. AI가 만들어낸 경제적 성과가 특정 기업이나 자본에만 집중되는 것을 막고, 국민이 그 성과를 직접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AI로 인해 직업 전환이나 소득 감소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국민배당은 하나의 소득 안전망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가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지금의 호황이 미래에도 같은 규모로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일시적으로 늘어난 세수를 지속적인 현금 지급에 사용한다면 향후 세수가 줄어들었을 때 재정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선택지도 있다. 늘어난 세수를 미래에 다시 투자하는 것이다.
● 현금 배당과 미래 투자의 사이
실제로 한국 정부는 올해 반도체 호황 등으로 늘어난 세수를 미래 성장의 종잣돈으로 활용하기 위한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했다. 정부 계획의 골자는 추가세수와 초과세수 등을 재원으로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등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다. 기금 규모는 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AI·반도체 산업의 성장으로 늘어난 세수를 국민에게 직접 배당하는 대신, 미래 성장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시 투자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국민에게 지금 나눠줄 것인가, 미래를 위해 다시 투자할 것인가. 국민배당을 둘러싼 고민은 결국 ‘무엇이 더 공정한가’와 함께 ‘무엇이 더 효과적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국민에게 현금을 직접 지급하면 단기적인 소득 보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교육과 재취업, 직업훈련 등에 투자하면 AI로 인해 일자리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도록 도울 수 있다.
AI가 노동시장을 빠르게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만큼 단순히 소득을 보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IMF는 AI 전환 과정에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동시에 교육과 재훈련, 평생학습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면서 노동자들이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AI 시대의 ‘분배’는 단순한 현금 지급 이상의 문제일 수 있다. 국민에게 돈을 나눠주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이 AI 시대의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분배의 한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AI 시대,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현재 논의되는 국민배당은 아직 구체적인 하나의 정책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찬반을 서둘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만들어낼 경제적 가치를 어떤 원칙으로 나눌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AI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 동시에 노동시장을 변화시키고 자본과 노동 사이의 소득 분배 구조를 바꿀 수도 있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경제정책은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혁신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 그 혁신의 과실을 더 넓게 공유하는 것.
이를 위해 AI 자체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할 수도 있고, 법인·자본소득 과세체계를 조정할 수도 있다. 늘어난 세수를 국민에게 직접 배당하는 대신 교육과 재훈련, 사회안전망, 미래산업에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어쩌면 정답은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AI가 만들어낸 부를 소수에게 집중시키지 않으면서도 기술혁신의 동력을 꺾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과거 산업혁명이 생산방식을 바꿨다면, AI는 생산뿐 아니라 노동과 소득의 분배 구조까지 바꿀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단순히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가?”가 아니다.
“AI가 만들어낸 부를 우리는 어떻게 나눌 것인가?”
국민배당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일 뿐이다. 아직 답은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AI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가 커질수록, 그 가치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결정하는 일 역시 우리 경제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AI가 번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답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답을 누가, 어떤 원칙으로 만들어갈 것인지다.
[매일경제 대학생 서포터즈 18기=이화여자대학교 원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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