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빵을 샀는데 『한 여름밤의 꿈』이 따라왔다. 정확히 말하면 민음사와 캐릭터 지식재산권(IP) 브랜드 ‘오늘의 귀여움’과 협업하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작품에 새롭게 적용한 『오만과 편견』의 표지를 담은 책갈피이다. 소비자는 어떤 작품이 나올지 모르는 책갈피를 얻기 위해 빵을 사고, 마음에 드는 책갈피를 모으며 자연스럽게 문학 작품과 만난다.
2026년, 민음사는 GS25와의 콜라보 ‘민음사빵’을 통해 이전의 출판 마케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의 출판 마케팅이 서점을 중심으로 책을 진열하고 신간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면, 민음사는 독자가 책을 처음으로 만나는 곳을 서점 그 이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텍스트힙(Text Hip)’ 열풍이 있다. 독서를 하나의 취향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문화로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면서 출판업계 역시 이들과 만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책을 무겁고 어려운 대상으로 제시하기보다 굿즈와 콘텐츠, 놀이와 협업 등 친숙하면서도 참신한 방식으로 책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민음사의 매출은 2023년 143억 원에서 2024년 166억 원, 2025년 206억 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역시 16억 원에서 24억 원, 42억 원으로 늘어나며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2023년과 비교하면 2년 만에 매출은 약 44%, 영업이익은 약 163% 증가한 셈이다.
민음사가 텍스트힙 열풍 속에서 보여준 변화가 단순히 화제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적 성장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러한 성장세 속에서 민음사는 독자와 만나는 방식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편집자의 일상을 보여주고, 독자들을 북클럽으로 연결하며, 세계문학전집을 키링과 책갈피로 변신시켰다. 최근에는 편의점의 빵부터 K-POP, 디지털 기기까지 책과 연결하며 독자가 책을 발견하고, 즐기고, 공유하는 과정 전체를 마케팅의 영역으로 넓혀가고 있다.
그렇다면 60년 된 출판사 민음사는 텍스트힙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젊은 독자들의 일상으로 들어가고 있을까.
● 책보다 사람을 먼저 보여주다 : 민음사 TV
민음사는 책을 알리는 방식부터 달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식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다. ‘책보다 재밌는 책 이야기’를 내세운 민음사TV는 자사 도서를 직접 홍보하기보다 편집자와 마케터 등 책을 만드는 ‘사람’을 콘텐츠의 중심에 세웠다. 책 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편집회의 현장, 담당 편집자가 들려주는 책의 뒷이야기부터 직원들의 문화생활까지 출판사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콘텐츠로 풀어냈다.
민음사가 처음부터 ‘책을 팔지 않는 채널’을 지향한 것도 특징이다. 조아란 민음사 마케팅부 부장은 “광고보다 사람에 대한 신뢰와 호감이 먼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민음사TV는 2026년 8월 기준 구독자 55만 명 규모의 채널로 성장했다. 영상에서 소개된 오래된 고전 『싯다르타』가 다시 주목받아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실제 책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나타났다.
민음사TV가 만든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홍보 채널을 확보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신간이 나올 때만 독자를 만나는 일회성 ‘프로모션’에서 벗어나, 콘텐츠를 통해 독자와 일상적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커뮤니티’로 출판 마케팅의 방식을 확장했다. 책을 먼저 판매하기보다 사람과 콘텐츠를 좋아하게 하고, 그 관심을 자연스럽게 책과 출판사에 대한 호감으로 연결한 것이다.
● K-POP과 독서를 연결하다: 르세라핌 X 민음사
민음사는 출판의 경계를 넘어 다른 문화 콘텐츠와의 접점도 적극적으로 넓히고 있다. 지난 9월 12일, 르세라핌의 싱글 2집 『Made My Night』 발매를 기념해 서울 성수동에서 ‘MADE MY NIGHT READING PARTY with 민음사’를 개최했다. K-POP이라는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콘텐츠를 독서 경험과 연결한 시도다.
민음사는 『Made My Night』이 담고 있는 ‘서로의 케미스트리로 특별해진 밤’이라는 메시지를 우정과 관계,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주제로 확장하고, 이에 어울리는 책을 직접 큐레이션했다. 참가자들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물론,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할 책을 직접 꾸미는 ‘북 커스텀’에도 참여했다.
단순히 아티스트의 인지도를 활용해 책을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음악의 메시지를 읽고 이야기하며 선물하는 독서 경험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결국, 민음사는 책의 경쟁력을 ‘책 안’에서만 찾지 않고 있다. ‘어떤 책을 알릴 것인가’를 넘어 ‘책을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K-POP과 출판이라는 서로 다른 문화 영역을 연결해 기존 독자를 넘어 새로운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책을 접할 접점을 만든 셈이다.
● Z플립의 새로운 사용법을 제시하다: Z플립 X 민음사
민음사는 독자가 책을 읽는 ‘방식’에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 9월 11일 삼성 강남에서는 민음사와 삼성전자가 함께한 ‘갤럭시 Z 폴드8 북토크’가 열렸다. 최근 독서를 하나의 취향과 개성으로 표현하는 ‘텍스트힙’ 문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종이책을 넘어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새로운 독서 경험을 제안한 것이다.
사전 응모를 통해 모인 약 100명의 참가자들은 갤럭시 Z 폴드8으로 전자책을 직접 읽어본 뒤 민음사 조아란 마케터, 박혜진 편집자와 함께하는 북토크에 참여했다. 행사에서는 문학 작품 추천뿐만 아니라 AI를 활용한 독서 방법과 디지털 기기로 책을 읽고 기록하는 방법 등 ‘요즘 사람들의 책 읽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민음사는 여기서도 단순히 자사의 책을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책을 어떤 기기로 읽고, 어떻게 기록하며, 새로운 기술을 독서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까지 독서 경험 자체를 콘텐츠로 확장했다. 이는 출판사의 역할이 종이책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에서 나아가 변화하는 독자의 생활 방식에 맞춰 새로운 ‘읽는 방법’을 제안하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책의 형태와 읽는 방식은 달라져도 결국 중심에는 ‘읽는 경험’이 있다. 민음사와 갤럭시의 협업은 출판과 기술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해,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책을 접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 사례다.
● 책을 파는 것을 넘어, 책을 경험하게 하다
책을 읽는 사람이 줄고 출판 시장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사람들이 책과 멀어진 것만은 아니다.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편집자를 통해 새로운 책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K-POP 아티스트의 음악을 계기로 책을 읽으며, 스마트폰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서를 기록하는 것처럼 책과 독자가 만나는 방식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민음사의 최근 마케팅 기획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을 판매할 것인가’뿐만 아니라 ‘독자가 어떻게 책을 발견하고 경험하게 할 것인가’다. 책을 만드는 사람과 일상을 콘텐츠로 만들고, 음악과 기술 등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문화와 책을 연결하면서 기존 서점과 종이책을 넘어 새로운 독서의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결국 책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책을 만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책 한 권을 직접 홍보하기보다 독자가 자신의 취향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발견하고, 읽고, 이야기하고, 공유하게 만드는 것. 60년 된 출판사 민음사가 텍스트힙 시대의 젊은 독자와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서점의 매대에서 유튜브로, 종이책에서 스마트폰으로, 그리고 음악과 편의점까지. 독자의 일상으로 한 걸음씩 영역을 넓혀가는 출판 마케팅. 앞으로 민음사가 찾아낼 책과 독자가 만나게 될 또 다른 접점은 어디가 될지 기대해 본다.
[매일경제 서포터즈 18기=경북대 권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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