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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화질은 낮아도 감성은 선명하게 : 다시 돌아온 빈티지 디카

부산대
이희승 한국외대 · 18기 서포터즈
2026.09.13

요즘 약속 장소에 나가면 조금 낯선 풍경을 볼 수 있다. 최신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사진을 찍을 때는 가방 속에서 오래된 아이폰이나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꺼내는 사람들이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스마트폰과 별도로 카메라를 챙기는 셈이다. 심지어 카메라 하나로도 부족해 색감이 다른 기기를 두세 개씩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화질은 매년 좋아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굳이 10년, 20년 전에 출시된 카메라를 다시 찾기 시작한 걸까. 최근 SNS에서는 그 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드 아이폰’, ‘빈티지 디카’ 등을 검색하면 기종별 사진 색감을 비교하는 게시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이돌이 사용하는 디카’, ‘여돌 디카 추천’처럼 특정 연예인이 사용하는 카메라 기종을 소개하거나, 같은 장소를 여러 카메라로 촬영해 색감을 비교하는 콘텐츠도 등장하고 있다.

최신 기종의 성능을 비교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어떤 기종이 더 감성적으로 찍히는가’가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빈티지 카메라와 올드 아이폰
빈티지 카메라와 올드 아이폰

● 성능은 과거에, 인기는 현재에

특히 주목받는 제품은 2000년대 전후 출시된 소형 디지털카메라다.

캐논 익서스(IXUS), 카시오 엑슬림(EXILIM) 등 한때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던 제품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카시오의 첫 EXILIM EX-S1은 2002년에 출시됐다. 당시 카시오는 이 제품을 어디서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웨어러블 카드 카메라’라는 개념으로 소개했다. 카드 크기에 가까운 작은 크기와 휴대성이 당시 제품의 주요 특징이었다.

20년 넘게 지난 지금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중고거래 플랫폼에 해당 제품명을 검색해보면 오래전에 단종된 디지털카메라들이 여전히 활발하게 판매되고 있다. 일부 인기 모델의 경우 오래된 중고 전자제품임에도 수십만원대 가격으로 매물이 등록돼 있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캐논 익서스, 카시오 엑슬림 등을 직접 검색한 결과, 2000년대 출시된 디지털카메라가 현재도 거래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캐논 익서스, 카시오 엑슬림 등을 직접 검색한 결과, 2000년대 출시된 디지털카메라가 현재도 거래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더 선명한 사진보다 ‘내가 원하는 색감'

빈티지 디카의 인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성능이 뛰어나서 선택되는 제품이 아니라는 데 있다.

현재 스마트폰 카메라는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보다 훨씬 높은 화질과 다양한 촬영 기능을 제공한다. 사진을 찍자마자 SNS에 업로드할 수도 있고, 별도의 기기 없이 보정까지 가능하다.

반면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는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옮기는 과정부터 상대적으로 번거롭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불편함보다 카메라마다 다른 ‘결과물’이 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고 있다.

빈티지 디카로 촬영한 사진을 보면 낮은 해상도나 강하게 터지는 플래시, 기종마다 조금씩 다른 색 표현이 눈에 띈다. 과거에는 기술의 한계로 여겨졌던 특징이 이제는 해당 카메라만의 분위기를 만드는 요소가 된 것이다.

SNS에서 ‘디카 색감 비교’ 콘텐츠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진을 얼마나 선명하게 찍을 수 있는가보다 ‘내가 원하는 분위기로 찍을 수 있는가’가 중요해지고 있다.

좌 Canon PowerShot A2400, 우 아이폰 16 PRO. 스마트폰과 빈티지 디지털카메라로 같은 장소를 촬영한 사진 비교. 기기별 색감과 플래시 표현 차이를 보여준다.
좌 Canon PowerShot A2400, 우 아이폰 16 PRO. 스마트폰과 빈티지 디지털카메라로 같은 장소를 촬영한 사진 비교. 기기별 색감과 플래시 표현 차이를 보여준다.

● Y2K, 입는 것을 넘어 ‘찍는 것’으로

빈티지 디카의 부활은 계속되고 있는 Y2K 유행과도 연결해볼 수 있다.

처음에는 2000년대 유행했던 로우라이즈, 크롭티, 액세서리 등 패션이 다시 등장했다면 이제는 당시 사용하던 전자기기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현재 빈티지 디카를 소비하는 젊은 세대에게 해당 제품이 반드시 ‘추억의 물건’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 디지털카메라를 직접 사용해본 경험이 많지 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낯설기 때문에 새로운 물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집 안 서랍 속에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카메라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처음 접하는 독특한 촬영 도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을 SNS를 통해 공유하는 문화가 더해진다. 어떤 아이돌이 사용하는 카메라인지, 어떤 모델이 인물 사진을 예쁘게 찍는지, 어떤 기종의 플래시가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를 만드는지까지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

카메라는 더 이상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위기와 취향을 표현하는 하나의 아이템이 되고 있다.

● 오래된 제품의 ‘단점’이 새로운 가치가 되다

기술의 발전 방향만 놓고 보면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를 다시 사용하는 것은 다소 역설적으로 보인다. 카메라는 더 높은 화소와 빠른 촬영 속도, 편리한 연결 기능을 갖추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런데 모든 스마트폰이 점점 더 선명하고 완성도 높은 사진을 만들어내면서, 일부 소비자는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사진에서 차이를 찾기 시작했다. 조금 흐릿한 화질, 예상보다 강한 플래시, 모델마다 다른 색감 등 과거에는 개선해야 할 성능의 한계였던 요소가 지금은 ‘빈티지 감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국 빈티지 디카 열풍은 단순히 오래된 전자제품이 다시 유행하는 현상만은 아니다. “가장 좋은 성능의 카메라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느낌을 만들어주는 카메라’를 찾는 소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0년 전에는 부족한 성능으로 여겨졌던 특징이 오늘날에는 하나의 취향이 됐다. 화질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그 카메라에서만 나오는 ‘감성’만큼은 오히려 더 선명해진 셈이다.

[매일경제 대학생 서포터즈 18기=한국외국어대학교 이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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