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직 신입 채용 공고, 1년 새 43% 줄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지만 면접 기회를 준 회사는 멕시코 식당 '치폴레'뿐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한 미국 청년의 말은 AI 시대 취업 시장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업의 생산성과 매출은 AI 덕분에 빠르게 크고 있지만, 정작 '신입사원 채용'의 문은 더 좁아지고 있다.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발표한 '2026 채용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 정규직 신입 채용 공고는 전년 대비 43% 줄었다. 경력직 채용도 41% 감소했다. 회사도 사람도 움직이지 않는 '대잔류' 국면에 들어선 셈이다. 경기 침체로 앞이 잘 안 보이는 상황에 AI 확산까지 겹쳤다.
● IT 업종은 67% '뚝'… 업종별로 갈리는 채용 한파
업종별로는 'IT·통신'의 정규직 채용 규모가 가장 많이 줄었다. 이 업종의 정규직 신입 채용 공고는 2024년 899건에서 지난해 293건으로, 무려 606건(67%) 감소했다. AI 도입에 따라 기업들이 신입을 새로 뽑는 대신 기존 인력을 재교육·재배치하며 사업을 운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건설·토목(53%), 판매·유통(44%), 서비스(38%), 제조·생산(33%) 순으로 감소폭이 컸다. 업계에서는 기업들이 최대한 기존 인력 규모를 유지하려는 기조를 감안하면, 이는 일시적 위축이 아닌 구조적 변화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 왜 하필 신입인가… AI가 대체하기 쉬운 건 '형식지'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신입 의존도가 낮아지는 '연공 편향적 기술 변화'라 부른다. 과거에는 신입사원이 선배를 도와 보고서 초안을 쓰고 기초 데이터를 정리하면서 실무를 배웠다. 하지만 이제 기업들은 그 역할을 AI에게 맡기고, 기존 경력직에게 AI 도구 활용법을 가르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보고서는 이런 현상을 데이터로 뒷받침한다. 2022년부터 최근 3년간 청년층 일자리는 21만 1천개 감소했는데, 이 중 98.6%(20만 8천개)가 AI 노출도 상위 업종에서 발생했다. 챗GPT 출시 이후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통합관리업 청년 고용은 11.2%, 출판업은 20.4%, 전문서비스업은 8.8%, 정보서비스업은 23.8% 줄었다. 반면 같은 업종에서 50대 취업자는 오히려 14만 6천명 늘었다.
한국은행은 그 이유로 '업무의 성격'을 꼽는다. 저연차일수록 AI로 대체 가능한 업무 시간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문서로 정리된 지식(형식지)은 생성형 AI가 재현하기 쉽지만, 현장 경험과 멘토링을 통해 쌓이는 암묵지는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 한국만의 문제 아니다… 美 AI기업도 "청년 고용 최대 16% 감소"
이런 흐름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AI 기업 앤트로픽이 발표한 'AI가 노동 시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AI 노출도가 큰 직무에서 22~25세 청년 근로자 고용은 챗GPT가 출시된 2022년보다 약 6~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AI 노출도가 74.5%로 가장 높았고, 고객서비스 담당자(70.1%), 데이터 입력자(67.1%) 순이었다. 반면 요리사, 정비사, 바텐더 등 현장·육체노동 직종의 노출도는 0%였다.
다만 앤트로픽 스스로도 이 수치를 '간신히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이라 표현할 만큼, 아직은 단정하기보다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초기 신호에 가깝다. 실제로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전혀 다른 급여 데이터(ADP)로 별도 분석한 결과에서도 22~25세 청년 고용이 약 1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서로 다른 방법으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이 흐름이 모든 곳에서 똑같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미국의 비영리 교육연구기관 스트라다교육재단이 기업 임원·인사책임자 1,4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월스트리트저널 인용)에 따르면, 올해 신입 채용을 '늘리겠다'는 응답은 46%로 '줄이겠다'는 응답 17%보다 2.7배 많았다. AI를 위협이 아니라 지렛대로 삼을 수 있는 인재라면 오히려 문이 넓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AI 때문에 신입 채용을 줄이겠다는 응답 비율도 지난해 13%에서 올해 17%로 늘어나는 추세여서, 기업 간 온도 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생산은 느는데 고용은 준다… AI 시대 성장의 역설
산업연구원의 'AI·디지털 전환 고용영향 사전평가' 보고서를 보면 이 역설이 더 뚜렷해진다. 국내 정보서비스업의 생산액은 12.4% 늘었지만, 같은 기간 취업자는 오히려 4.2% 줄었다. 법률·회계 등 전문서비스업도 생산은 8.7% 늘었는데 고용은 2.1% 감소했다. 기업의 실적과 청년의 일자리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 남 얘기 아니다… 지금 준비해야 할 것
이 변화가 무서운 건, 신입이 실무를 배우며 성장하는 '사다리의 첫 칸'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력을 쌓을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정작 채용 시장에서는 '실무 경험'과 '뛰어난 AI 활용 능력'을 동시에 요구받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이라면 이제 "AI를 얼마나 잘 다루는가"가 스펙 한 줄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 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현장 경험, 협업 능력, 그리고 AI를 도구로 다루는 역량을 함께 갖추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비일지 모른다.
[매일경제 서포터즈 18기=전남대 강민경]
댓글 작성 시 입력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