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필품 중심 주부의 공간에서, 전 연령의 ‘미(美)’를 책임지게 된 다이소
“이거 다이소에 들어왔다는데?”
요즘 SNS에 뜨는 화장품 관련 게시글을 보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말이다. 신상 화장품이 출시되면 올리브영보다 먼저 다이소를 찾고, 인기 제품은 입고되자마자 품절된다. 몇천 원짜리 화장품을 사기 위해 여러 지점을 찾아다니는 ‘다이소 오픈런’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특히 다이소 뷰티의 인기는 1020 세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합리적인 가격에 성분과 기능까지 챙길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다양한 연령대의 소비자들이 다이소 화장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튜브에 ‘다이소 화장품’을 검색할 시 무수히 많은 관련 숏츠와 롱폼 영상이 쏟아진다. 꾸준히 신제품이 출시되는 만큼 몇 년 전 영상부터 금일 업로드 된 영상까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20만원 백화점 제품보다 핫한 다이소 화장품’, ‘실패없는 고품질템’ 등 가격뿐 아니라 성능을 강조한 콘텐츠도 여럿이다.
실제 다이소 뷰티는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다이소에 따르면 화장품(기초·색조) 카테고리 매출은 2023년 전년 대비 85% 증가한 데 이어 2024년 144%, 2025년에도 약 70% 늘었다. 입점 브랜드 역시 2024년 말 60여 개에서 2025년 말 140여 개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상품 수는 2022년 말 기준 120여 종에서 2026년 1월 1,700여 종으로 확대됐다. 대형 화장품 업체들의 진입도 이어졌다. 아모레퍼시픽의 다이소 전용 브랜드 ‘미모 바이 마몽드’는 출시 4개월 만인 2025년 1월 누적 판매량 100만 개를 넘어섰고, LG생활건강의 ‘CNP 바이 오디-티디’ 역시 출시 9개월 만인 2025년 5월 누적 판매량 100만 개를 기록했다.
여기까지 살펴봤을 때 기존 유통업체에 대한 우려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다이소 뷰티 흥행 초기에는 올리브영 등 기존 업체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까지 있었다.
그러나 실제 수치는 당시 예상과 정반대이다. CJ올리브영의 2025년 별도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21.8%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22.5% 늘었다. 다이소 역시 같은 해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다이소가 성장하면 올리브영이 줄어들 것이라는 단순한 예상과 달리 두 유통채널이 동시에 커지고 있는 셈이다.
2만 원 화장품과 3천 원 화장품의 동시 성장, 이 놀라운 동행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 싼 화장품이 ‘비싼 화장품’을 대체한 것은 아니다
다이소 뷰티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가격이다. 모든 상품이 5천 원 이하라는 가격 구조 덕분에 소비자는 새로운 브랜드나 제품을 비교적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다. 여기에 최근 SNS를 통해 제품이 빠르게 알려지면서 화제성이 매장 방문까지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다이소의 뷰티 상품 구성이 올리브영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다이소가 현재 판매하는 뷰티 브랜드는 150여 개, 상품은 500여 종 수준이다. 반면 올리브영은 2,400여 개 브랜드와 6만여 종의 상품을 운용한다. 상품의 폭과 가격대, 소비자가 제품을 비교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변화는 사실상 ‘다이소가 올리브영을 대체한다.’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렵다. 소비자가 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선택지가 그만큼 늘어난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가깝다.
특히 화장품은 한 번 구매하면 끝나는 상품이 아니다. 새로운 성분과 제품이 꾸준히 등장하고, 소비자는 자신의 피부 상태와 취향, 트렌드에 따라 제품을 주기적으로 바꾼다. 낮은 가격으로 새로운 제품을 경험하는 소비와 여러 브랜드를 비교해 본품을 구매하는 소비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이유다.
● 올리브영은 단순 ‘판매대’가 아니다
올리브영의 실적을 보면 또 하나의 변화가 눈에 띈다. 대형 화장품 기업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최근의 성장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올리브영에서 2025년 연 매출 100억 원 이상을 기록한 입점 브랜드는 116개로 집계됐다. 2020년 36개에서 5년 만에 3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이 가운데 닥터지, 달바, 라운드랩, 메디힐, 클리오, 토리든 등 6개 브랜드는 올리브영에서만 연 매출 1,000억 원을 넘어섰다. 메디힐은 처음으로 2,000억 원을 돌파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이들 브랜드가 처음부터 대형 화장품 기업의 대표 브랜드였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올리브영은 국내 중소·신생 뷰티 브랜드가 소비자를 만나는 주요 접점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2026년 기준 전체 입점사의 90%가 중소·중견기업이다.
이는 올리브영의 역할이 단순히 잘 팔리는 제품을 가져다 놓는 것을 넘어섰다는 의미이다. 신생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제품을 선보이고, 반응을 확인하고,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유통·마케팅 채널로 성장했다. 실제로 올리브영은 라이브커머스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활용해 신진 브랜드의 소비자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다이소가 낮은 가격을 앞세워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인다면, 올리브영은 더 다양한 브랜드와 제품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지를 넓히는 방식으로 시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 다이소 역시 단순한 저가 매장에서 벗어나고 있다
2025년 아성다이소의 매출은 4조 5,363억 원으로 전년보다 14.3%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4,424억 원으로 19.2% 늘었다. 화장품뿐 아니라 패션과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상품군을 확장하면서 소비자가 다이소를 찾는 이유 자체를 늘리고 있다. 특히 뷰티 카테고리는 다이소의 전략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다.
처음부터 다이소가 모든 화장품을 직접 기획한 것은 아니다. 기존 뷰티 브랜드와 협업해 다이소 전용 제품을 선보이고, 균일가라는 가격 구조에 맞춰 용량이나 제품 구성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상품군을 확대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대형 화장품 기업까지 다이소에 제품을 선보이면서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결국 다이소의 경쟁력은 가격을 넘어,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화장품 시장에서 부담 없이 새로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 또한 SNS에서 화제가 된 제품을 빠르게 매장에 선보이는 구조가 맞물리면서 소비자의 방문 빈도를 높이고 있다.
● 한국 화장품 제조업의 탄탄한 경쟁력이 기반이 되다
이렇듯 저렴한 가격과 빠른 제품 출시가 동시에 가능했던 배경에는 국내 화장품 제조 생태계가 있다. 한국에는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등 글로벌 ODM 기업이 자리 잡고 있다. ODM은 브랜드가 제품의 콘셉트를 제시하면 제조사가 연구개발과 생산까지 담당하는 방식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자체 생산 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제품을 출시할 수 있어 신규 브랜드의 시장 진입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최근 실적에서도 이러한 산업 구조의 경쟁력이 확인된다. 코스맥스는 2026년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7,949억 원, 영업이익 737억 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한국콜마 역시 같은 기간 화장품 부문 매출 6,064억 원을 기록했다. 두 회사는 올해 2분기 기준 글로벌 ODM 시장 매출 1·2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 브랜드와 제조사가 빠르게 제품을 개발하고 소비자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산업 구조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 국내에서 성장한 K-뷰티, 이제는 해외로
무엇보다 가장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파이 자체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K-뷰티는 국내 경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5년 국내 화장품 수출액은 114억 달러로 전년보다 11.8% 증가했다. 화장품 무역수지 흑자는 101억 달러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은 2025년 화장품 수출 규모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2위 수출국에 올랐다. 수출 시장도 한곳에 집중되지 않았다. 2025년 국가별 화장품 수출액은 미국이 22억 달러로 가장 많았고 중국 20억 달러, 일본 11억 달러가 뒤를 이었다.
국내 유통채널의 역할도 이 과정에서 달라지고 있다. 올리브영은 2025년 1월부터 11월까지 방한 외국인의 오프라인 누적 구매액이 1조 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2022년 연간 실적과 비교하면 약 26배 증가한 규모다. 외국인 매출 비중도 전체 오프라인 매출의 25%를 넘어섰다.
● 다이소와 올리브영, 경쟁하며 함께 키워가는 시장
이렇듯 다이소와 올리브영의 실적이 함께 증가하는 현상은, ‘한쪽이 다른 쪽의 시장을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다이소는 저렴한 가격과 전국적인 접근성을 바탕으로 뷰티 제품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접점을 넓혔다. 올리브영은 수천 개 브랜드와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지를 확대하고, 동시에 중소·인디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유통망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장한 브랜드들은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로 향하고 있다.
결국 지금의 K-뷰티 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단순히 ‘다이소와 올리브영 중 누가 더 많이 파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가 새로운 제품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구매하고, 다시 다른 브랜드를 찾고, 해외 소비자에게까지 제품이 확산되는 전체 과정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서로 다른 가격대와 유통채널에서 시작된 경쟁이 결과적으로 K-뷰티라는 더 큰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5천 원짜리 화장품의 인기가 반드시 기존 뷰티 시장의 위축을 의미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K-뷰티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저가가 고가를 대체하는 현상’보다는 소비자가 더 자주 발견하고, 더 쉽게 시도하고, 더 다양한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장의 크기 자체가 넓어지는 과정에 가깝다.
다이소의 품절 대란과 올리브영의 역대급 실적. 얼핏 보면 서로 모순돼 보이는 두 장면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유다.
[매일경제 서포터즈 18기=서강대 박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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